나이 열 살에 이르도록 기섭은 자신의 출생내력이라든가 부모들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자신이 어떻게 해서 세상에 생겨나게 되었고 또 오영감네 집에서 살게 되었는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모양으로 살다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그런 것들에 대해서 그는 도무지 캄캄하기만 하였다. 누가 어린 그에게 그런 것들을 일삼아서 일러준다거나 하지도 않은 탓이었고 그가 그런 것들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은 까닭이었다. 그리고 그가 나이 열 살에 이르도록 그런 것들을 전혀 모르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은 것은 그에게 늦둥이의 기질과 품성이 다분한 때문이었다. 나이가 어린 것 이상으로, 그에게는 숫되고 미련한 어리보기의 모습도 완연한 것이었다. 하여튼 그는 자신과 자신의 부모에 대해 너무도 아는 것이 없었다. 어머니는 애초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웠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별로 없었다. 6.25사변 전에 아버지가 어린 그에게『너두 인제 핵교이 들어갈 테니꺼, 핵교 댕기게 되믄 공부 자알 헤갖구서 후제 꼬옥 높은 사람이 데어야 한다!』하고 누누이 말하였던 것과, 그런 아버지의 몇 가지 단편적인 모습들과 장면들만을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높은 사람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높은 사람이 되며 자신도 과연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높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뚜렷한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기섭은 어느 날, 자기 나이도 모르고 사는 어른 머슴으로부터 뜻밖의 매우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마님의 꾸중 섞인 명령으로 오 영감네 가족들만 사용하는 안 변소의 인분을 퍼내다가 잠시 쉬는 자리에서였다.
『니가 어떻게 해서 이 시상에 생겨나게 되었는지, 느이 아베허구 어메가 어떻게 만나갖구서 너를 낳었는지, 내가 오늘 너헌티 그 얘기를 헤주랴?』하고 어른 머슴이 말을 내던 것이었다.
기섭은 잠시 어른 머슴의 수염 없는 턱을 멀겋게 바라보았다. 귀가 솔깃해지긴 하였지만 자기 나이도 모르고 사는 사람, 턱에 수염도 없는 어른 머슴이 왠지 실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말이 곧이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어른 머슴은 8.15해방 전까지 읍내의 일본사람 집에서 인력거를 끌고 온갖 궂은일을 다하며 살았다고 하였다. 깔축없는 종살이였다. 그러다가 나라가 해방되자 읍내의 그 일본사람 집이 오영감네 차지가 됨과 동시에 그도 오영감네 차지처럼 되어 그 후로 쭉 머슴살이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말이 머슴살이지 새경을 받지 않으니 종살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니 실제로 종이었다. 어쩌면 그와 나이가 비슷할 거라는 마님은 그에게 호령과 욕설을 예사로 해대었고 젊은 아씨도 그에게 곧잘 꾸중을 하는데 그럴 때는 거의 하대로 까지 말을 놓아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종처럼 천대 받고 하대 받는 그는 자신의 나이도 분명히 모르는 미련퉁이인 데다가 사타구니 속이 텅 비어서 온전한 사내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타구니 속이 텅 비어서 턱에 수염이 없고 목소리가 가랑잎 구르는 소리 같다나…. 그 모두가 능멸 받고 놀림 받기 좋은 것들이었다. 동네 사람들도 한결같이 그를 천대하고 능멸하며, 놀려대기도 일쑤인 것 이었다. 그래도 화낼 줄도 슬퍼할 줄도 모르고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는 그는 그래서 정녕 미련퉁이요 땅파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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