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가, 형편없는 아둔패기 몰골이기도 한 어른 머슴이 갑자기 긴한 표정에 긴한 목소리를 하니, 역시 어리보기인 기섭도 의아스럽고 냉큼 곧이 들리지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심히 의아스러운 바람에 기섭은 곧 긴장을 하고 정색을 하였다. 솔깃해진 귀가 조금도 숙지 않는 상태였다.
『헐 티먼 허유. 다 들을 틴께』하며 기섭은 한 걸음 다가앉았다.
『그려, 그럼』하고 얼른 머슴을 콧속 깊이에 든 콧물을 입 안으로 풀어내려 칵 뱉고는 말을 시작하였다.
『느이 아배가 너를 맹그느라구 얼매나 고생을 헌지 아니? 지성 정성 다디려서 갱신히 용케 맹글었다구!』
기섭은 사람이 사람을 낳고, 어른이 되면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아배와 어메가 같이 아이를 낳아서 젖을 먹여 키운다는 것은 전에도 들은 적이 있지만, 어떻게 해서 아이를 만드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가가고 시집가서 남자와 여자가 같이 살게 되면 저절로 아이가 생겨나는가 보다는 생각도 하면서 잠자코 어른 머슴의 얘기를 귀담아 들었다.
여뭇 기섭의 아버지는 기섭을 만들기 위해서 별스럽게 애를 썼다. 자식을 얻기 위한 집념이 있었다.
『나는 지금 비록 요 모양 요 꼴루 넘의 집 머슴살이를 허는 신세지먼, 애비가 츤허다구 자식꺼지 츤해지는 시상은 인제 아니니께, 내 간혹 떡 두께비 같은 아들눔 하나 덩실허게 낳어갖구서 자알 키워볼 거여! 그러구 이보란 듯이 공부시켜갖구서 밴드시 훌륭헌 사람으로 맹글 티어! 그러니께 두구들 보라구! 두눈 똑바루 뜨구들 보란 말여!』
그것이 아버지의 유일한 소망이었고, 또한 그 소망이 아버지의 사는 이유였다. 아버지는 기섭을 낳기 3년 전부터 그런 소망을 가꾸기 시작하였다. 그전에는 머슴살이해서 받은 새경을 노름과 술로 며칠 동안에 어이없이 탕진해버리곤 하였었다. 그러나 소망과 결심이 생겨난 후로는 노름과 술을 끊고 착실히 새경을 모았다. 그리고 여자를 얻어 들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바닥이 좁고 궁벽한 촌구석에서 그것은 실로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집도 없고 일가친척도 하나 없는, 더구나 근본이 우중충하고 현재도 머슴인 사람에게 평생을 맡기고 들어올 여자가 없었다. 오 영감네 집 씨종의 자식으로 태어나 자라서는 새경 받는 머슴으로 탈바꿈하였을 뿐 여전히 비천하게 살고 있는 그에게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항시문제인 것은 지우지도 못하고 감출 수도 없는 근본이었다. 물론 근동에는 근본이 좋지 않은 집안의 과년한 처자들도 여럿 있었지만 그 쪽과의 혼사는 더더욱 어려웠다. 이미 개명한 하늘 아래의 개혁하고 변모한 땅이었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양쪽 다 서로의 근본 때문에 지극히 탐탁지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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