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한 대박해가 휩쓸고 지나가는 동안 이 땅의 신자들은 그 신앙을 뿌리내릴 여유조차 가질수가 없었다.
박해가 일어날때마다 그들은 성직자들을 비롯, 교회의 중책을 맡았던 회장들을 잃어버림으로써 신앙의 기본을 이루는 교리전반을 교육받을 기회가 도무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와중에서 최양업 신부는 천주교의 기초적인 교리를 현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시키는 신앙노래를 지어 황막했던 교우들의 신심을 북돋우는데 앞장섰다. 이 노래들은 어둡고 고달팠던 박해시절 깊은 산골에 묻혀살며 신앙을 지켜나가던 수많은 교우들의 신앙적인 기반을 다져주는 핵심적인 신앙교리서라 말할 수 있다. 천주가사. 그것은 바로 최신부의 수많은 업적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유산으로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김옥희 수녀는 그의 논문에서 최양업 신부의 천주가사 내용은 대부분 천주교의 기본교리를 간단하면서도 명확하게 간추려 조선시대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가사문학인 4ㆍ4조의 가사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말해 천주가사는 당시 신자들의 교화와 수덕(修德)의 방법으로 사용되었으며 한편 신앙이 없는 미신자들에게 신앙의 합리성이나 천주교 교리의 필요성을 명쾌한 논리로 전개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김옥희 수녀는 지금까지 발견된 작품중에서 저자명이 명기되어 있는것은「金約瑟」소장본 및「金東旭」소장본 그리고「박동헌」본과 김진소 신부의 소장본인「事主救靈歌」본과「김베드로의 歌帖」, 또한 최근에 확인된「순교자박물관 소장본」(김옥희 수녀 소장)등을 들고 있다.
물론 저자명이 수록된 19편의 천주가사 전부가 최 신부의 저술이 아닐것이라는 친저성 문제가 의문점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김옥희 수녀는 당시의 배경으로 볼 때 대부분의 천주가사는 최 신부가 저술했을 것이라고 논문에서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특정한 신자들이 최 신부의 뜻을 따라 천주가사 일부를 저술했다하더라도 천주가사에서 나타나고 있는 교리지식의 해박함, 호소력의 권위, 위엄있는 교훈적인 어투는 분명 최 신부의 가르침이나 강력한 영향력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천주가사의 일부가 최 신부의 작품이 아니라는 확실한 근거가 없는 현재로서는 그에대한 보다 사려깊은 연구가 시급하다고 김 수녀는 논문에서 지적하고 있다.
어쨌든 확실하게 저자명이 명시되어있는 천주가사는 장ㆍ단가를 모두 합쳐서「사향가」「영세가」「천당가」「지옥가」「십계강론」「삼세대의」「견진」「고해」「성체」「종부」「신품」「칠극」「혼배」「제경」「행선」(行善)「애덕」「션종가」「사심판가」「공심판가」등 모두 19편.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천국에 대한 갈망과 천국을 사모하는 노래들을 비롯, 지옥의 무서움 등과 칠성사의 은혜 혹은 그 필요성, 은총에 대한 의미, 십계의 풀이나 하느님의 구원계획, 칠극(七克)의 일곱가지 죄의 근원에 대한 경계, 혼인의 의무, 교회의 제반의무, 선한 죽음과 아울러 사심판과 공심판, 애주애인(愛主愛人)에 대한 실천을 강조하는 등 실로 광범위하게 구성돼있다.
그중에서도 최 신부의 대표적인 저술로 알려진「사향가」는 가장 긴 가사로서 천주가사가 실려있는 모든 가사본에 거의 기재되어 있으며 특히「삼세대의」본과「사주구령」본에는 거의 완벽하게 수록되어있다고 김 수녀는 말하고있다.『어화 벗님네야 이내말 좀 들어보소…』로 시작되는 이 장가는 현세의 부귀영화의 헛됨과 인간의 죽음, 또는 고해(苦海)의 세상 및 지옥의 무서움, 외교인들과 신자와의 비유와 대등법, 혹은 훈계, 천주존재 및 인간육신의 헛됨이나 영혼의 불멸성, 천지창조와 인간창조, 강생구속의 은혜, 하느님께 대한 본분 등을 비유로써 노래하는 등 천주교의 모든 교리가 집약되어 있는것을 볼 수 있다. 사향가가 일반외교인에게 호소하는 내용이라면 삼세대의는 영세한 신자들에게 신ㆍ구약성서의 내용에 따라 묵상을 할 수 있게 엮은 노래로서 특히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업에 대한 내용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정신적 구원을 노래하고있다.
김옥희 수녀는 이밖에 선종가, 사심판가 공심판가 등 모든 가사들도 한결같이 한국인의 전통적인 문학이나 곡조에 알맞게 서구식으로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연결시키면서 결합시키는 문화적인 작업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고 밝히고있다.
김 수녀는 한국교회 2백년사 안에서 천주가사의 출현이야말로 가장 귀중한 한국 종교문학으로서 혹은 서민 문학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장 한국적인 냄새가 나는 천주교의 문화적 소산인 천주가사는 한국인의 전통사상과 서민의식에 알맞게 그리스도교 교리를 연결시키고 토착화한 형태의 가사로서 일반대중과 부녀자 어린이들까지도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로써 귀중한 가치를 찾아볼 수 있다고 김 수녀는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김 수녀는 박해시기의 일반대중들이 정신적인 생명과 광명에 참여하고 억압받았던 서민들에게 가치있는 삶을 제시했던 천주가사는 9명의 서양선교사틈에서 오직 한 사람의 한국인 사제로서 한국인의 심성이나 전통적인 방법을 깊이 인식, 문화적인 측면에서 큰 사명을 깨달은 값진 문화적 결실이라고 거듭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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