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하는 임까밀로 부용 신부님은 1869년 프랑스 남쪽 피레네 산기슭에 있는「루르드」성지에서 약15km 떨어진 아두르 마을(vielleㆍadour)에서 태어났다. 그는 19세에 빠리외방전교회에 들어가 극동선교에의 꿈을 불태우다가 24세에 영원한 탁덕의 사제가 되었고,「마르세이유」에서 그렇게 존경하던 성모님께 자기일생을 맡기고 조선으로 향하는 배를 탔다. 넉 달만인 1893년 9월 13일 종현(현ㆍ명동)에 당도한 그 늠름한 청년신부는 자기이름을 임가미(任加彌)로 고치고는『나는 조선사람이 되었다』고 희희낙락했다. 그는 부흥골(범이 많아 흔히 범골이라고 부른다), 곧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에 첫 본당을 차렸다. 지금도 거기가보면 임 신부님이 공소출장 길에 오를적마다 말타실 때 디딤돌로 쓰던 바위가 밭 가운데 있다. 그분이 약수라고 즐겨 마시던 옹달샘이 옛얘기를 해주고 있는듯하다. 8개년을 범골 초가집 본당을 지키시며 여려 공소를 순회하시다가 충북 장호원을 지나게 되었다. 바라보니 뒤에는 매산이 병풍같이 둘러있고, 앞에는 남향받이 큰 기와집이었다. 그는『어머님! 저 대궐을 제가 인수토록케 해주시면 여기에 오묘한 매괴(로사리오)의 성당을「어머님」께 지어드리겠습니다』이렇게 진심으로 성모님께 허원약속을 하고는 기적의 패를 그집 뒤 산기슭에 몰래 묻었다.
『응! 이건 어머님의 꼭 들어주실 것이니까!』하고 철석 같은 신념을 뒤섞었다.
그때 장호원에는 교우 하나도 없고 바퀴벌레 한 마리도 영세한게 없었으니 말이다. 여기에 본당을 세우면 자기 관할지역의 중심지가 되겠기에 이런 거창한 계획을 한아름 안으신 것이다. 임 신부님이 점찍어놓은 저 시골 대궐은 고종황제의 부인 명성황후 민비가 임오군란때 숨어 살던곳으로 그 오라버니 민응식의 집이었다.
1930년 봄 우리 조선신부들 동창회(용산 신학교)에 같이 자리해주신 임 신부님은 침이 마르도록 장호원 얘길 해주셨다. 필자가 조선성교회역사를 하다니까『에이! 이것봐! 오 요셉학사님, 역사하려면 이런것도 배워둬야지. 응, 안 그래?』구스름한 충청도사투리에 구성지게 꺾어 넘어가는 억양이 어쩐지 맘에 들었다. 『신부님! 그래서 어떡하셨어요?』『어떡하긴 뭘 어떻게 해! 아, 이것 좀 봐. 글쎄 처음에는 10만냥을 달라지않아? 입을 딱 벌렸지. 그것도 일이 잘 될라니까 동학군이 민비일족을 미워해서 그 대궐을 불질러 홀랑 태워버렸지뭐야. 왜 조선풍속에 집안이 잘 될라면 불이나야 된다매? 아무려나 우리 어머님의 일은 불꽃같이 타오르게 됐지뭐야. 그렇찮우? 우리학사님!』
『그래서 결국 신부님이 매수하셨나요? 그 대궐터를』『아무렴, 그렇구말구. 아, 글쎄 10만냥 달라던 것이 8백 60냥으로 떨어졌으니 우리 어머님 땡이지뭐야? 글쎄 일이 될라면 불이나야 되는가바. 집안이 망하는 판에 모조리 팔아재끼기데. 잿더미가 된 집터 땅 20정보가 넘는 뒷산 매산도 휩쓸어 8백60냥에 샀다니까. 학사님, 이런 신통방통한 일이 어디있어?』
임 신부님은 10평짜리 사제관을 마련하고 그 전 대궐자리에 80평이나되는 거대한(당시로 봐서)성당을 건립하고 어머님께 한 허원약속대로「매괴의 성모」라고 명명하였다.『성모님께 감사 하기위하여 마당에 느티나무를 심고 그 나무에「1896」이라고 금줄로 파서 이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 후대에 전할라고했지. 아, 한번가봐. 이젠 그 나무를 쳐다봐야 된단말이여!』
임 신부님은 인재양성의 필요성을 느끼자, 1907년에 매괴학당을 설립하여 거기 출신들이 그 일대서 교회나 사회활약에 주름잡았다.
1910년 경술년 한일합방이 되던 날 임 신부님은 밤중에 태극기를 차곡차곡 개어 파란보자기(성모님의 옷 색깔)에 고이 싸가지고 성당으로 들어가서『어머님! 어미님도 나라 잃은 설움속에 로마제국 군인 말굽소리에 소름이 끼치셨지요. 우리는 지금부터 일본인에게 유린당하고 나라 빼앗긴 피눈물을 흐리고 있습니다.
어머님! 이 나라 이 민족이 태극기를 다시 보게 해주시는 날까지 매일 당신 아드님을 봉헌하는 제대 밑에 숨겨 놓습니다. 부디 이 늙은 아들도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게 해 주십시오!』한없이 울면서 예수님과 어머님만이 들으시는 기도를 드렸다.
이윽고 해방되던 날, 그것도 어머님 승천하신 날 낮 12시에 임 신부님은 태극기를 꺼내어 깃대에 달고 동네방네로 다니면서『이 태극기도 해방이다! 이 태극기도 해방이다! 대한독립만세!』하고 외쳤다. 그날 밤이 지새도록 제대 옆에 모신 매괴의 성모상 앞에 부복하여 한없이 울었다.
인간이 너무 기쁘면 울음이 터지기 마련 아닌가?
그는 1947년 10월 25일 매괴성월에 78세를 일기로 이 세상에서 가시었다. 부임 당시『이 장호원의 모두, 한 사람도 제외치않고「어머님의 아들딸」을 만들겠다』고 하신 그 뜨거운 소망은 지금 성취되는 가보다. 장호원 바닥이 거의 다 교우가 됐으니말이다.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