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로마는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일까? 특히 베드로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소위 매고 풀어주는 권한, 즉 베드로의 首位權이 로마와 특별한 관계가 있었던 것일까? 과연 베드로는 로마까지 왔던 것일까? 이에 관해 성서에는 로마를 뜻하는 바빌론에서 베드로가 편지를 보냈을 것을 시사하는 것(I 베드로 5ㆍ13)외에 직접적인 증언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로마에 와서 로마교회를 창설하고, 순교하고, 로마에 묻혔다는 전통이 교회 안에 일찍부터 형성되었다.
「쿠오 바디스」란 유명한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영화화되어 수많은 이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소설의 줄거리인 즉 이러하다. 사도 베드로는 감옥에서 도망쳐 나오자 자신에게 죽음이 곧 닥칠 것이 두려워 로마를 떠난다. 로마를 빠져나가는 도중에 그리스도가 그에게 나타난다. 베드로가 놀라서 묻는다.『주님 어디로 가십니까?』(Domine,Quo v,adis?) 주님은 베드로에게『나는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러 로마로 간다』고 대답했다. 베드로는 부끄러워서 로마로 돌아가 곧 순교한다.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 베드로는 그의 잘못을 속죄하려는 뜻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 주기를 청했다. 현재 로마의 아피아 안티카 가도 초입시, 즉 베드로가 주님을 만난 것으로 전해지는 자리에「쿠오 바디스」로 불리는 조그마한 성당이 서있다. 「쿠오 바디스」의 이러한 이야기는 전설이다. 그러나 전혀 근거 없는 전설은 아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교회의 오랜 전통을 근거로하여 그 전통을 더욱 풍부히 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설이기 때문이다.
「쿠오 바디스」성당 외에도 로마에는 베드로가 로마에서 살고 죽었음을 상기시키는 기념물들이 많다. 예컨대 베드로를 묶었던 쇠사슬도 남아 있다.
이 쇠사슬은 로마의 빈콜리거리의 성베드로 쇠사슬 성당에 보존되어 있다. 중세기에 이 쇠사슬에서 값진 소형의 쇠줄과 쇠고리를 만들어 임금들에게 선사한 교황들로 있었다.
임금들을 로마의 성 베드로와 더욱 긴밀히 연결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 이와 같은 교회의 확고하고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과연 베드로가 로마에 왔을까, 로마주교가 과연 베드로의 후계자일까에 대한 의혹이 가끔 일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삐오 12세 교황은 베드로의 무덤을 확인하기 위해 1904년과 1957년 두 번에 걸쳐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대제대 밑의 소위「콘페씨오」(순교자의 묘)의 발굴을 시도했다. 이 고고학적 발굴로 여러 무덤 중에서 베드로의 무덤을 확인하는 데까지는 성공하지 못했으나 베드로가 거기에 묻히고 또 거기서 공경을 받은 사실만은 명백히 입증되었다.
1백20년 경의 것으로 보이는 베드로의 기념비가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이백년경에 로마의 가이오 사제가 바티칸의 오스티아 가도에서 목격했다는 바로 그 기념비였을 것이다. 이 기념비가 묘지 안에서 발견된 것은 베드로에 대한 공경이 일찍부터 이 장소에서 거행되었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또한 기념물을 둘러싸고 있는 벽의 낙서에서도 그곳이 베드로를 공경한 장소였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무엇보다도「베드로가 여기있다」는 희랍어로 새긴 비문의 발견은 이 발굴의 가장 큰 성과의 하나였다. 바오로 6세 교황은 발굴의 결과를 엄격히 검토하고나서 1968년 6월 26일「우리가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성 베드로의 유골이 확인되었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베드로가네로 황제 때 64년이거나 67년에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순교한 후 그 근처 바티칸 언덕에 묻혔다는 교회의 가장 오실로 간주될 수 밖에 없게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가톨릭교회가 왜 로마가톨릭교로도 불리게 되었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물론 로마가톨릭으로 불리는데에는 반드시 좋은 뜻만 아니라 나쁜 뜻도 있다. 나쁜 뜻으로의 호칭은 종교개혁가들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들은 로마가 가톨릭이란 말을 독점하려는데 분개하고 또 로마만이 가톨릭이 될 수 없다는 주장에서 천주교를 로마가톨릭으로 제한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종교개혁가들은 로마나 성공회나 희랍정교가 다 같이 하나의 가톨릭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하며 역시 로마가 가톨릭을 독점하려는데 반대했다. 이리하여 로마가톨릭란 말이 교황에게 충성하는 그리스도교인들로 제한하여 지칭하는데 적절한 표현으로 통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로마가톨릭이란 동시에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를 표현하는 말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의해 베드로에게 수위권이 부여되었고, 베드로가 로마교회의 최초의 주교로서 그 수위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그의 후계자들도 실제로 로마주교직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베드로의 수위권을 계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로마주교들은 전체 교회에서 차지하는 그들의 특수한 지위와 의의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고, 한편 다른 모든 교회들도 그와 같은 특수한 지위를 인정했던 것이다. 일부 신학자들은 베드로와 로마의 연결이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었는가, 아니면 베드로가 그의 주교좌를 로마에 정한 것이 처음부터 하느님이 의도했던 것인가의 문제를 둘러싸고 토론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항상 수위권을 로마에 결부시켰으므로 교황의 로마주교좌의 계승이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에서 였다는데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것은 언젠가 교황이 로마와 연결을 끊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는 별개의 것이다. 로마와의 연결에는 로마 시내의 교황의 거처까지 반드시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교황은 로마주교인 것으로 충분하다. 실제로 교황이 로마 밖에 거처한적이 비일비재 하였고, 한때는 교황들이 70년 동안이나 프랑스의 아비뇽에 거처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교황이 로마주교이니만큼 로마에 거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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