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4월 4일에 나는 동기 여섯명과 같이 1ㆍ2품을 받았다. 지금은 이 품들이 없어졌지만 우리 시대에는(제2차「바티칸」공의회까지) 중요한 품이었다.
1품은 성당문을 여닫는 성품이라고하여 수문직(守門職)이라했는데 1품을 받을 청원자는 성당 제의방에서 기다리다가 성당 자물쇠를 받고 종소리와 함께 성당에로 인도되어 주교님앞에 꿇어 훈계를 듣는 성품중의 하나이다. 2품은 강경품이라해서, 주교님께 독서책을 받고 자신이 먼저 주의 말씀을 정독하여 마음에 새기고 남에게 말씀을 듣도록하는 한편, 성전에서 주의 말씀을 똑똑히 낭독하라는 훈계말씀을 듣는다.
이 두품을 받고 며칠아니되어 여름방학을 맞았다.『잘가라 잘지내라. 악마의 낚시질에 걸리지 말고, 지혜롭기는 뱀처럼 슬기롭기는 비둘기같이 하자!』고 서로 서로 염려해 주고 정든 고향산천 꿈에도 못잊는 어머님을 찾아서 동서남북으로 다 사라졌다. 나는 어디로 갈꼬? 독일 신부들이 경영하는 신학교 있는 아래응골에 집이있는 죄로 이번 방학에도 내 본집, 내 부모형제를 찾아가지 못하는 이 신세! 하는수없이 나는 또 3개월 깃들 보금자리를 찾아서…….
필자는 본당신부와 인연이 있는 충남 부여군 구룡면에 있는 금사리본당에 찾아가야만 했다.
아주 시골 성당이었다. 앞을 보면 멀리 청산이 아득하고, 뒤를 보면 그 옛날 3천궁녀가 백제의 패망을 설워하고 당나라 오랑캐의 손을 피해 순절로 애끓는 몸을 꽃송이 던지듯 떨어져간 낙화암이 구태의연하게 비통의 피를 토하고 있는곳이다.
이 금사리성당은 공 유리아노곰벨 신부님이 세운 붉은벽돌로, 마치 프랑스 한적한 마을 중앙에 위치하여 모든이의 영혼을 집중시키듯 중세기풍의 고딕식 성당의 종각이 저푸른 하늘을 어루만지고있다. 사제관 역시 불란서 시골본당 사제관에, 사면 어디를 내다보나 전원풍경이다.
앞들에는 졸졸졸 실같은 시냇물이 흐르고 멀리 산아래까지는 까마득한 파란 논에 농부들이 모내기에 숨이 가쁘다.
기쁨속에 일하고 일하면서 지칠줄 모르고 징치고 꽹가리를 치고 법꾸노름에 호적불고 둥둥둥 치는 북소리들의 구스름한 멜로디는 만산평야에 흘러 퍼진다. 그중에도 흐뭇한 것은 점심때가 되면 아주머니들이 광주리에 찬도 소복한 점심을 차려가지고 바람에 치마폭을 휘날리며 논두렁으로 열을 지어 이고 나오는 그 광경은 밀레가 있었으며「낙수」나「만종」(Angelus)대신 부여의 전원풍경을 틀림없이 그렸으리라. 먼저 먹은 젊은이들은 농주에 흉이 나는 김에 논두렁이에서 춤추며 농부가를 부르면 거기에 가락맞춰 꽹가리치고 징치는 멋이 농부들의 식성을 돋군다.
본당신부는 얼굴이 네모지고 색깔은 까무잡잡하고 수염은 실례지만 얌생이 수염처럼 방정맞게 쪽쪽 힘없이 느러졌는데 콧수염만큼은 공자님 수염같이 덕성스럽게 갈라졌고 코는 삐죽하게 나온데다가 이마는 대머리 사촌쯤되신 이 마티아여구 신부님이시다. 신학생 시절 늘 같은 본당에서 지낸 구면이라 어색한 데가 조금도 없건마는 처음 그 본당에 들어설 때 뜰아래로 내려오시면서『아이구, 이 흉한 시골에 서울양반이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구려!』하시며 웃음보를 터뜨리셨다.
첫날 하루는 내버려두더니, 하룻밤 자고나니까 일과를 부과하셨는데, 청년들 성가와 어린것을 교리를 가르치고 제의방과 미사준비를 맡으라는 지상명령을 내리신다. 다른것은 그날 그날 시늉을 내겠는데, 성가 가르치는것은 아주 질색이지 뭡니까? 목소리는 외마디항아리 깨지는 소리에, 곡조는 즉흥작곡해서 부르는 곡! 내가 부르다가도 기절초풍할 노릇이지!『얘 네가 웬 성가지도냐? 돼지 멱따는 소리하는 주제에?』『그래도 어떻게 하니? 신부님이 하라는데는 난들 별수있니?』『얘! 염치가 소금치러구나!』『얘! 토마스 아퀴나스가 학생지도시절에 누가와서 뿔이 긴 황소가 쥐새끼도 못들어가는 구멍으로 들어가려고 뿔을 들이박고 뜸매질을 한다고하니 그는, 그런 미련한 황소가 기어이 그 구멍으로 들어가고야 만다고 했지않니!』이러한 자문자답을 혼자서 수없이 했다. 나도 이 3개월동안『날 잡아 잡수시유! 하고 그 미련한 황소노릇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이순명의 길이 신부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즉흥작곡이나마 잘하도록 성모님이 이 못난 아들을 도와 달라고 묵주신공을 매일같이 내딴에는 열심히 드렸다.
본당신부님은 나보다도 즉흥작곡을 더 잘하시니 누가 제자고 누가 스승인지 분간하기 어렵지 뭡니까? 외나무다리에서 둘이 잘 만났지 뭡니까!
밤이면 신부님의 가스등을 환히 켜들고 앞 개울에 고기잡이 나가서 그물을 치면, 고기들이 태양빛같이 환한 불빛에 오금을 못쓰고 그물에 들어온다. 몇시간 잡으면 석유양철로 반그릇씩 잡게된다. 낮에는 비지땀을 흘리다가도, 시원한 여름밤에 그물질하는것이 유일한 낙이였다. 자전거는 해주서 1929년 방학에 구 요셉신부님것으로 배웠지만 부여 금사리에 와서는 근 16개 공소를 가지신 이 신부님이시라 갑자기 종부가 나면 고장난 자전거로 가실 수 없을까하여 틈만나면 자전거 소제를 반들반들 해드리면서도 군침만 꿀떡꿀떡 넘겼지 뭡니까? 저로서는 그것 한번 못타보는 것이 큰 희생이였습니다.
이 신부님의 성덕은 말할것도 없다. 신학교서부터 공자님으로 통하신 그분은 사제에게 가장 귀한 성덕이 정덕인지라 여기서도 내게 큰 교육을 시키신 분이시다. 식모를 일부러 아주 노인을 두시고 그 따님이 사제관 출입을 할때, 들어오면 으레 양쪽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자! 볼테면 봐라!」는 식이였고 이와같은 행동이 내게 큰 교훈이었고 교우들에게도 별다른 생각을 못하게 하신 것이다.
여기서 3개월 방학을 고스란히 다보내고 나는 다시 용산신학교로 개학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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