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무렵에 그 마름의 집 나뭇간은 홀라당 불에 타고 말았다. 그 불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오 영감과 어린 손자와 기섭의 아버지 모두 솔가지더미 속에서 불에 타 참혹하게 죽고 말았다.
그 끔찍한 소식은 다 저녁 때 오 영감의 집으로 들어왔다. 오 영감을 숨겨준 것이 발각나서 마름은 어디론가 몸을 피했다며 허겁지겁 달려온 그 마름의 아낙이 터뜨린 울음소리로 그 사실을 전갈하던 것이었다. 실로 끔찍한 비보였다. 오 영감의 어린 손자를 업고간 기섭 아베가 함흥차사 마냥, 돌아올 시간이 훨씬 겨웠는데도 오지 않아 종일 불안 불안해 하였던 마님과 아씨는 단박 숨이 끊어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님과 아씨는, 그리고 나이 어린 애기씨도 대성통곡을 하였다. 대성통곡을 하다간 실신들을 하였고, 깨어나서는 다시 구슬피 울었다.
주인댁 식구들이 밤새 그러는 통에 기섭은 별로 울지 못하였다. 어떻게도 마음놓고 울어볼 수가 없었다.
여섯 살 나이에 이른 그는 아버지가 불에 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대강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았다. 사람이 죽어 장례 치르는 것, 땅에 묻는 것을 여러 번 보기도 한 그는 죽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만큼 아버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도 가슴에 확연히 느꼈다. 그러나 그는 이상스럽게도 마음놓고 울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죽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이, 그리고 자신만이 덜렁 남아 끈떨어진 외톨로 살게 되었다는 흐릿한 생각들이 막막한 느낌을 안겨주고 또 이상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안겨주는 때문이었다.
그는 주인댁 식구들, 마님과 아씨와 애기씨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들으며 까닭모를 위축감에서 놓여나지 못하였다. 자신도 크게 소리를 내어 울음을 터뜨린다면 무엇이 꼭 잘못될 것만 같고, 자신의 부당한 존재를 들켜 버릴것만 같고, 어떤 송구스러움이 솟고라질 것만같은-그런 이상한 껄끄러운 느낌들이 그의 어린 가슴에 가득한 것이었다. 그는 다만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행랑채 후미진 방의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훌쩍 훌쩍 작은 울음으로 눈물 콧물을 흘렸을 뿐이었고, 그러다가 옆으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아무도 그런 기섭에게 신경을 써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 날 마름의 집 나뭇간 잿더미속에서 끔찍한 세구의 시체를 옮겨왔을때도, 그리고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여 시체들을 땅에 묻을때도 기섭은 실컷 울 수가 없었다. 간간이 흘쩍거림으로 눈물 콧물을 흘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눈물 문지른 그의 손등에 검은 땟물이 흘렀을 뿐이었다.
『그런디 니가 핵교이 들어가게 데먼, 그러니께 그 난리가 일년만 참었더라먼 차암 좋았을텐디…느이 아베는 머슴살이를 청산허는 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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