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짜리 친구가 하는 말씀.
『저는 어릴 때 교회주일학교에서 성탄 연극을 했었는데 그때 저는 삼왕으로 황금을 바쳤지요 그래서 이때만 되면 그 옛날 연극할 때 제 자신을 그려보면서 추억에 잠기게 됩니다』
21살 6개월 된 친구는『저는 그런 종교적 추억은 없고 성탄때면 친구집에 모여서 선물을 교환하고 노래를 부르고 오락을 즐기며 과자나 사탕등을 쌓아놓고 소박하게 어울려 놀던 그 친구들이 그리워 집니다』
20살 하고도 11개월 된 친구도『저는 성탄이라고 하면 제가 배운 자전거실력을 발휘하여 그날 용돈을 두둑히 받은 기억뿐입니다. 부모님이 가게를 하셨기 때문에 그날이면 저녁 늦게까지 부모님을 도와서 제가 배달을 했지요. 추운 날 온종일 자전거를 타는 괴로움과 물건이 딸릴 정도로 재미보던 일입니다.』
이렇게 나가기 시작한 우리의 이야기는 성탄이 주는 의미가 서로 전적으로는 일치되지 않았습니다. 98%가 되는 非가톨릭、60%가 되는 비크리스찬들에게 성탄의 뜻은 훈훈한 마음으로 구세주의 오심을 진정으로 마음에 모시려는 신앙인들과는 달리 엉뚱한 세계에서 콧노래를 부르거나 무심히 켜놓은 텔레비전의 화면이나 라디오소리 정도의 뜻일지 모릅니다.
『아저씨. 하느님이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봅니까? 일단 인간이 되었으면 그는 하느님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그 옛날에 탄생한 한 인간의 죽음이 온세상 모든 인간들의 영혼을 구하는 길을 열어놓았다고 그렇게 쉽게 믿을수 있습니까. 그렇게 어이없는 이론을 믿는 이 수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따분한 미성숙한 인간들입니까? 미안합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은 할 수 없이 세상사람들의 생활이 가소로와져서 이렇게 성탄이면 어이없어서 술 한잔 하지 않을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맞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믿으라고 고집세우는 사람은 더 미성숙한 인간일거야 너희는 나를 성숙한 인간、정상적인 사람인가보다 하는 생각만 하면 땡큐야. 난 천주교 믿거든』
이러한 대화를 나눈 후「믿음을 논하지말고 인간다운 행동을 해보자고 권하면서 술은 그만하고 이제 일어나서 꼬방동네 구멍가게를 찾아가보자」고 권하였고 마침 모두 동의를 하였습니다.
구멍가게 안에 들어가 주인께 정중히 인사를 하고「우리는 간첩이 아니고 도둑도 아니고 깡패도 아니고 다만 용돈이 조금은 있는데 무엇을 뜻있게 사볼까」하고 찾아 왔다고 인사를 드리고 이 동네에서 특별히 살기 어려워 곤란을 받는 집들에 대해서 여쭈었더니 동네집들의 경제사정을 그렇게 훤히 잘 알고 있는게 아닙니까.
「연탄을 한장씩만 사가는 집」「라면을 매일 두개씩 사가는 집」「초콜릿 같은 것은 단 한번도 사가지 않은 집」……근거를 들어가며 말씀해 주시는 가게주인은 이 동네 어른 아이들의 주머니사정을 훤히 아시는 경제동태 전문가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4명이니 네집만 방문하자고 정하고 이 가게에서 정해주는 집에 그집이 내일이면 이 가게에서 틀림없이 사갈 물건들을 미리 사서 무조건 갖다드리자고 하였습니다.
할머니와 어린 딸만이 사는 집、지게지는 아저씨와 병든 아주머니와 두아이가 있는집、친구들 셋이서 모여사는 집. 모두가 그나마도 세들어사는 집들이라 갑자기 찾아간 우리들은 할 수 없이 동네가게집 아주머니와 친척뻘이라고 하면서 어물어물 멋쩍어하며 첫집에서는 앉을 자리도 없는 3평 단칸방이라 문만 삐끗이 열고 문앞에 연탄 세덩이를 놓고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착한 일 하기가 이렇게 어려울줄은 몰랐습니다. 어색하고 부끄럽고 거북하고 무슨 말을 못하겠다고… 그러나 이순간 우리들의 이런 감정은 서로 통한 점이었고 얼굴을 서로 쳐다보면서 씨익 웃어보는 것으로 족하였습니다.
이젠 밤11시가 가까워졌는데 내가 천주교 신부인지를 모르는 3명은 오늘 처음 만난 나에게 진정한 호기심을 갖는 눈치였고 또한 신앙의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도 보였습니다. 자기들끼리 손으로 무슨 싸인을 하면서 말을 건넸을 때는 버스정류장에 왔을 때였고 나는 주머니에서 토큰을 꺼내어 2개씩 주면서「이것은 나의 선물」이라고 하며 내주었습니다. 『아저씨는 학교 선생님이시죠? 그렇지요?』하길래 나는 미소를 지으며『못속이겠는 걸!』했더니 그들은 셋중에 성탄연극을 했다는 친구를가리키며『선생님、성탄을 믿을 만합니다』하는 것입니다.
나머지 둘은 그 친구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겠다면서 내일 모레면 성탄이라서 그것을 종교문제로 이야기하다가「신앙인들의 성탄의미는 결국 기념행사」라고 낙인을 찍고는「웃기는 사람들」이라는데 동의한 후 한잔씩 나누고 기왕이면 종로성당 앞에가서 2차를 하자고 했었답니다. 그들은 기분나면 모든교회앞에서 한잔씩 하면서 세사람의 우정을 나누자고 하던 참에 카드집에서 나오는 내게『아저씨 카드 얼마치나 사셨어요?』하고 건넨 말 때문에 11시가 넘은 늦은시각 버스정류장에서 토큰을 선물받았던 것입니다.
『오늘의 성탄은 지저분한 세상에 아름다움을 탄생시켜보는 것이고 그 아름다움을 키워보는데 뜻이 있지않나 생각해』
헤어지면서 그들에게 내가 건네준 말입니다.
신학원으로 돌아오며 나는「아저씨 노릇하기가 참 힘들었네」하며 혼자 빙긋이 웃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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