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야기를 우리는 그 시작과 끝을 연결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 「바르티매오」라는 「소경 거지」가 예리고의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예수님을 만나 시력을 되찾고 그분을 따라갔다. 중간에 전개되는 이야기는 소경이 예수님을 「어떻게」만났는지를 말해주는데 그 강조점은 소경과 예수님의 태도에 있다. 구체적 치유방법에 관한 언급은 「말」외에는 하나도 없다. 소경과 예수님의 태도는 각각에 해당되는 동사들을 연결시켜보면 매우 뚜렷해진다. 소경과 예수님의 적극적인 태도가 강조되어 있다.
먼저 소경의 태도를 보자. 오늘 복음 이야기에서는 소경의 적극적인 믿음의 외침이 매우 강조되어 있다. 길가에 앉아 구걸하던 그가 예수라는 소리를 듣고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용기있게 외친다. 더구나 다른 사람들이 잠잠히 잇으라고 말리는 데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더 큰 소리로 외친다. 예수님이 자신을 부르신다고 하자, 그는 아마 그가 가지고 있던 것으로는 전체였을 『겉옷을 벗어 버리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 다가간다』여기에는 예수님께 대한 소경의 철석같은 믿음이 잘 드러난다. 이 소경의 태도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은 무엇보다도 그의 「용기있는 신앙태도」이다. 이 소경은 남을 탓하고 있지 않을 뿐 아리아, 남이 방해하더라도 거기에 개의치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이에 비하여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떠한가?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데 있어서도 남에게 탓을 돌리기 쉽다. 예를 들자면, 자기 가족 중의 누군가(시어머니, 며느리, 아내, 남편, 자식들 등등)가, 또는 교우들 중의 어느 누군가가 자기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거나, 큰 실망을 주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신앙생활을 계속 못하겠다』는 식의 말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리고의 소경 바르티매오가 예수님을 향해 표현하고 있는 적극적인 태도에서 본받을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적극적으로 자비를 베푸시는 예수님의 모습도 강조되어 있다. 소경의 경우에서처럼 여기서도 예수님과 관계된 동사만을 연결해 묵상해 보면 예수님의 적극적인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 그분은 「소경거지」의 외침을 들으시고 『걸음을 멈추신다』, 그리고는 소경이 당신께 다가오는 것을 옆의 사람들이 막으려고 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그를 가까이 『불러오라』고 명하신다. 그리고는 당신께 다가온 그 소경에게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하고 자상하게 「물으신다」.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는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동사들이 보여주듯이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불쌍한 사람에게 자비로이 다가가시는 예수님의 단면을 볼 수 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거지 소경의 태도가 신앙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치유받은 이 소경이 『예수님을 따라나섰다』는 말에서 「따라나서다」라는 동사는 마르코 복음서에서 여러 경우에 「제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길가에 앉아(첫구절, 46정) 불쌍하게 구걸을 하던 어느 소경이 예수님을 만나 치유를 받은 후,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따른다(끝 구절, 52정)는 뜻이 된다. 더구나 마르코 복음서의 문맥을 볼 때 예수님은 지금 고난을 받으시기로 되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있는 중이시다. 바르티매오는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 나선 셈이다.
예리고의 소경 치유이야기는 이 이야기가 나오는 문맥을 살펴볼 때, 거기에 담긴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예리고의 소경이야기의 바로 앞에는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에 관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예고가 있었고, 이 예고를 그분의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하였다는 것이 매우 강조되어 있다. 이 대목을 예리고의 소경이야기와 관련시켜보자. 사실, 제자들은 외적으로는 멀쩡한 눈을 갖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뜻을 알아보는데 있어서는 「소경」이었다. 반면에 예리고의 소경은 비록 육체적으로는 소경의 상태였지만, 예수님을 알아보는데 있어서는 「밝은 눈을」가지고 있었다. 거지 소경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분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정리해 보자. 예리고의 소경치유에 관한 복음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세가지 점을 생각하게 한다. : 첫째, 이 복음 말씀은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 초대한다. 다른 사람들의 방해를 무릎쓰고 소경에게 가까이 가시어 그를 자비로이 만나주시고 그를 치유해 주신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을 믿으라고 초대한다. 둘째, 이 복음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예리고 소경의 용기있는 신앙태도를 본받으라고 초대한다. 특히 꾸준히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기도하라고 초대한다. 셋째, 이 복음은 우리도 마음의 눈이 멀어있는 소경이 되어 있지 않은지 반성하게 한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이 지으신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을 전혀 볼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고 산다면 우리는 소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만일 우리가 가족의 사랑도, 이웃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씀도 볼 줄 모르고, 모든 것이 다 『내 노력 덕분이다』라며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도 마음의 눈이 멀어있는 소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보고도 못 본다면 이 어찌 소경의 처지가 아니겠는가! 만약 이런 상태에 있다면 우리 모두도 주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고백하며 눈을 뜨게 해달라고 간절히 청해야 할 것이다. : 『주님, 저희도 소경입니다.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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