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는 2백년동안 14개교구와 6백50여본당, 1천여명의 성직자, 4천여명의 수도자, 약 2백만명의 신자로 성장, 이땅의 종교군(宗敎群)에서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다. 우리의 신앙선조들은 세계교회사에 유래가 없는, 선교사의 전교없이 자생적으로 교회를 활성화 했으며 우리민족의 전통과 사상의 토양 위에서 열매를 맺으려 했으나 1세기에 가까운 기간 동안 겪은 박해로 칩거상태에 머물러야만 했었다. 신교(信敎)자유 이후 회생을 시도하는 단계에서는 일제치하의 수난, 6.25동란등 민족의 아픈 역사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면서도 이 민족 복음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해방과 함께 분단된 조국의 한쪽은「침묵의 교회」로 남는 아픔을 겪었으나 남한의 교회는 성장을 거듭, 외형적으로는 대단한 결실을 거두었지만 성장과 함께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에 본보는 2백주년 특별좌담을 통해 2백년 교회의 전통을 분석 진단, 복음화 제3세기를 맞은 한국교회의 좌표를 제시하고자한다.
▩ 參席者(가나다순)
◇具仲書(수원대학 교수)
◇沈相泰(神父·가톨릭대 교수)
◇趙珖(고려대학교 교수)
◇崔鏞錄(神父·서울 월곡동 주임)
◇崔昌武(神父·가톨릭대교수)
◇玄錫虎(가톨릭교리연구소장)
◇黃祐慶(修女·여자수도회장상연 회장)
▩ 司會=梁漢模(크리스찬사상연구소장)
■記錄=高國相 次長
■日時=1983년 12월 16일
■場所=上智會館
▲梁=한국천주교회가 쌓아온 2백주년의 전통 위에서「이 땅에 빛을」제시하기 위함이 오늘 모임의 대주제 입니다. 따라서 이 모임의 사회를 본다는 것은 역사의 무거운 짐을 지는 느낌입니다. 2백주년을 맞이하여 전교회 구성원이 굉장히 바쁘게 움직이며 선교3세기를 향한 의지에 불타고 있습니다. 선교3세기의 출발선상에서 과거를 돌이켜보고 비젼을 제시하기 위해 자유스럽게 이야기를 하면서 과거를 냉철히 반성하고 한국교회에 가장 절실한 참회를 이루기 위해 교회를 비롯 각자의 신앙을 쇄신하면서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趙=한국천주교회가 이제 2백년의 전통을 갖추게 됐습니다. 우리교회 2백주년 전통은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 전체의 역사인 2천년에 비교하면 불과 10분의1에 불과하지만 2백년의 전통이 결코 짧은 전통은 아닐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2백년전 이 땅에 들어온 것은 조선후기 한국사회 자체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후기의 시대적 조건과 관련하여 교회사가 가지고 있는 전통의 의미를 생각해볼 때 제일 먼저 한국천주교회는 근대사회를 형성시키는데 촉진제로서의 역할을 했고 근대사회를 형성시키고자 하는 노력 때문에 자발적으로 교회도 창설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평등사상의 보급이겠습니다.
그리고 여권(女權)의 신장, 어린이 보호 등을 위해 노력한 점도 중요한 우리교회의 전통이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가 가지고 있는 전통 중에 근대문화의 형성을 위해서 일정한 자극제 역할을 한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근대문화라고 할 때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개방문화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개방문화의 형성을 위해서 중요한 기여를 하는 과정에서 한글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한글을 교회차원에서는 거의 공인하다시피 했으며 한글의 보급, 한글구조의 연구를 위한 교회의 노력은 오늘날의 우리교회가 가지고 있는 전통과도 연결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사회가 처하고 있었던 고민, 특히 개항이후를 보면 반봉건운동과 반제국주의 운동이라고 하는 측면을 위해서도 일정한 기여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2백년 전통은 토착화의 과정을 의미하며, 이 토착화의 과정은 새로운 과제들, 더 많은 과제들을 오늘의 교회에 부과시켜주고 있습니다.
▲崔鏞=우리는 이러한 우리교회의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제대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계몽노력이 부족 한데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선조들은 피땀을 흘려가면서까지 노력해 왔는데 우리들이 사회에 제대로 인식시키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具=종교ㆍ신앙도 그 지역문화에 수용되고 소화되지 못했으면 그 지역문화에 뿌리를 내렸다고 보기 어려운데, 교회내적으로 2백주년을 기념하듯이 신앙체제, 교회의 토대를 가지고 천주교가 발전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에서는 객관적으로 천주교의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사회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것은 천주교 신앙이 그만큼 전통사회에 토착화 되지 못했고 사회 안에서 생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천주교가 한국에 들어와서 2백주년이 돼오는 동안에 과연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제대로 수용, 소화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교회와 신자들이 반성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앞으로 생각하고 대책을 마련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玄=천주교를 수용한 실학파학자들은 민족과 국가를 위한다는 의식이 강렬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의 활동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민족의식을 오히려 위축시켜 나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억제해온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黃=한국에 수도회가 진출한 역사가 1세기가 가까워오면서도 정신사적인 면에서 제대로 정립이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초기 단계에서 토착화에 대한 의지의 부족에서 파생된 결과로 생각되며 어느 면에서는 원점에서 새로 출발해야 하는 단계에 서있다고 보여집니다.
▲沈=우리는 2백주년을 맞이한다고 하면서도 정신적인 면에서 아직도 채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의 진리를 받아들였던 선각자들은 우리민족의 사상ㆍ저농의 토양위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여 열매를 맺으려고 했는데 그 시도가 타의(종교박해)에 의해서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이어서 우리 민족에게 신앙의 진리를 가져온 외래 선교사들은 전형적인 서구 우월주의에 젖어있어 그들은 무의식중에 서구문화와 종교가 다른 지역의 종교나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가졌었고, 그 우월의식을 현실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2백년 이라고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교회는 서방외래종교로서의 면모를 아직까지 탈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학사상은 물론이려니와 신심형태, 전례양식, 교회건축양식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서구교회를 모방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제2차「바티깐」공의회에서 교부들은 서구문화권 이외의 문화와 전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발자취를 찾아낼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 이제 대결 내지 배척대신 대화와 수용의 자세를 만방에 보여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단 우리들은 그리스도인 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인으로 머물고 앞으로도 한국인으로 머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지닌 고유한 자질을 최대한으로 발췌해서 독특한 신앙생활을 하게 될 때 오늘날 지구촌화된 좁은 세계안에서 정체내지 침체의 모습을 보이는 오랜 서구교회에도 활력을 줄 수 있는 그러한 능동적이며 독창적인 교회로 발돋움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玄=한국교회가 2백년 전통을 쌓아 올리는데 있어 외국 선교사들의 노력은 지대했다고 봅니다. 순교정신으로 활동해온 그들의 노고에 감사 드리면서 그들이 이 땅에서 활동하는 동안 파생시킨 문제점도 찾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崔昌=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인간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복음의 은혜라면 지금의 우리로서는 특히 두가지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 스스로가 정말 진실해지고 성실하자고 하는 입장인데 이것은 이론적으로 이상을 추구하기 보다는 내가 아는 것만큼 살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입니다. 진실하게 되면 인간의 한계성은 그 안에서 극복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성하가 된 인간이기 때문에 한국 교회의 과거를 비판하는 보다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성하가 된 인간이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과거를 비판하는 보다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선조들이 선교사들의 부족했던 점을 걸러내고 그 안에 들어있던 알맹이인 복음을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선교했듯이 우리도 우리의 현재에서 최선을 다하고 회개하고 선교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며 우리가 선교하고 회개하는데 지장되는 과거와 현재의 요소가 무엇인가를 찾아내 분석하고 판단ㆍ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梁=선교사들은 이 땅에 순교정신으로 들어왔으며 순교까지 한 사실은 한국민족으로서, 한국 신자의 한 사랑으로서 정말 감사 드리고 있으며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당연히 전제로 하고 지금 우리가 2백주년이라는 한 배를 타고 여기까지 왔기에 총 점검을 하고 다시 항해하기 위한 준비로 오늘에 비추어서 과거를 반성하되 한국교회의 기능적인 측면을 보면서 동시에 역기능적인 요소를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2백주년을 맞이하면서 성숙도의 관점에서 오늘을 다시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고 우리는 아직 미숙한 처지에 있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자인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난 82년「빠리」에서 출판관계 공부를 하고 있는 한국성직자로부터 들은 것인데 그 해에 독일에서 전세계종교출판물 세미나가 열렸을 때 아프리카나 인도에서 온 가톨릭계 출판사관계자들은 각자 고유한 신앙 신학사상이 취급되는 서적을 소개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번역서들만을 내놓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유치함이 적나라하게 펼쳐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른바「번역신학」의 단계, 「모방교회」의 수준을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것입니다.
교회사적 측면을 보면서 동시에 민족사의 맥락에서 교회의 밝지 못했던 점도 이야기를 해준다면 양면성을 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趙=번역신학의 단계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을 궁금하게 여기게 되는데 그 원인 중의 하나는 결국 교회자체 내에서도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습니다.
교회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초기에는 지식인이 중요한 역할을 발휘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당시 지식인이라고 하면 동양문화적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그 문화전통을 올바른 방향을 이끌어 나가려고 하던 의욕도 동시에 가지고 있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초기교회에서는 동양 전통 문화에 대한 몰이해를 기반으로 이른바 제사문제라든지 그 밖의 여러가지 전통적인 요소들을 부인해왔기 때문에 여기에서 지식인들의 탈락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 같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민중교회화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신학의 정립내지는 신학자체에 대한 연구는 점차 멀어져간 것이며 당시 국내에서 훌륭한 역할을 많이 했던 선교사들도 역시 한국인의 의기 내지는 그러한 가능성을 키우기 보다는 문화이식 이라고 하는 입장에서만 교회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은 오직 신앙이라고 하는 것에만 전념을 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지성의 뒷받침이 없었으므로 한국신학의 부재현상, 한국민족 내지 사회에 대해서 교회가 마땅히 발휘를 해야 할 그 역할에 대한 분석조차 하지를 못했고 여기에서 결국은 한국 교회가 일시적인 침체를 걷게 된 것 같습니다.
▲崔昌=선교사의 탓을 지적하기보다는 바로 교회자체의 모순이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트리덴틴」공의회의 가장 큰 공헌중 하나가 성직자의 레벨을 올리기 위한 신학교 제도이지만, 계몽주의사상 등으로 교계제도 등 교회자체가 그러한 방향에 있었고 교회의 지침이 그러했다는 근본적인 지적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19세기말 20세기초부터는 신학교에서 다른 것을 가르칠 수 없었고 국제공통어인 라틴어 독본으로 나온 교본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따라서 신부가 되려면 이 교육에 충실해야 했다는 교회제도 때문이라고 봅니다.
또한 신학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되고 있으면서도 각 가정에서 교육열을 가지고 각 가정의 예산에서 투자하는 만큼 한국교회가 지성적인 교육과 발전을 위해서 연구하는데 투자하고 있는가 묻고 싶습니다.
▲崔鏞=한국교회에서는 과거에 별로 인재양성에 힘을 쏟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6ㆍ25동란이후1950년대에 한국에서 성지가ㆍ평신도를 대량으로 외국유학을 보내면서 전환점을 가져온 것 같습니다. 다행히 이때부터라도 인재를 양성시킨 결과로 우리교회가 몸부림치고 과거를 반성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黃=우리들은 지금까지 한국의 수도영성사가 얕고 짧다고 비관적으로 생각해왔고 한국인 수도회에서 조차 토착화된 수도영성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2백주년을 계기로 우리초기 교회사를 살펴볼 때 여성들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당시 유교사회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기도생활과 전교활동을 할 것 등은 정말로 우리의 수도사가 짧다고 생각 할 것이 아니라 2백년 역사 전부가 우리의 것임을 재발견할 수 있습니다.
▲梁=한국교회 초기에 여성들이 모여 공동생활을 하면서 수도생활형태를 갖추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전통을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데 이러한 요소들을 볼 때도 우리의 선조들이 천주교를 수용할 당시 정말 토착화하려는 정신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전통을 본받아야 하는데 교회사적으로 중지 지속돼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具=지금까지 여러분이 토착화 문제를 많이 이야기하신 것은 오늘에 있어서도 그만큼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사에 대한 반성을 하는 것은 긍정을 위한 부정일 것이며 역사의식이란 원래 과거를 오늘에, 오늘을 내일에 연결시켜나가고 발판으로 삼는 것이고, 그러한 자세 위에서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거듭 얘기해도 충분치 못할 정도로 애석한 것은 과거에 우리천주교 신앙이 한국정신사에 일찍이 토착화하지 못했다는 차질의 문제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물론 성청당국이「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을 통해서 해결해놓고 있는 일이지만 불교의 경우에는 신라시대 향간문학이 성한 시대가 6세기부터 11세기사 이인데 이러한 때에 적어도 불교가족에게 심어주었으며 그 후 유교의 경우는 도덕심ㆍ윤리관말고도 이른바「天」사상을 강조, 하늘을 우주 본원으로 생각하고 경외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주교 신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이단시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침 자발적으로 천주교 신앙을 수용한 분들이 우리나라에서 과학사상과 민본주의와 복지정책 등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던 실학파 학자들이었고 그분들은 동양사상에 위화감을 주지 않고 천주학을 신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토착화에 실패한 것이 안타깝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떠한가?
오늘도 답답 하기는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에는 신학교 교육에서 국문학ㆍ국사학 등 국학을 필수적으로 교과과정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의회 가르침 속에서도 동시대 기타 학문을 신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교회는 아직도 폐쇄적이고 안일하고 권위주의적이고 교구별 장벽의 폐단 등을 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沈=거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시대의 징표를 직시하고 민족의 빛과 소금으로 취해야 할 자세를 정립하고 있는지 좀더 냉철하게 자문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은 정의사회구현의 열망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의 인간들은 평등한 가운데 인간다운 삶을 누리 수 있는 정의로운 복지사회 건설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와 이념을 초월해서 정의복지사회를 누구나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정의복지사회 건설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주창하셨던 예수님의 사상과 부합이 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복음의 핵심사상과 시대의 징표가 오늘날 기묘하게 일치하고 있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을 사는 온 인류의 염원인 정의복지사회 구현에 아낌없이 앞장서 참여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일차적인 임무이며 지상과제일 것입니다.▲玄=한국교회의 토착화 문제를 오래전부터 논의해오고 있습니다. 토착화를 이야기할 때 우선 전례ㆍ행사 등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러한 측면보다는 결국 한국문화의 토착이라는 점에 귀결이 된다고 봅니다.
신앙교리라든지 모든 것을 한국문화에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 그리스도교 정신을 어떻게 한국사회에서 수용하느냐가 토착화라고 보겠습니다.
토착화를 이루지 못한 결과로 천주교는 사회와 전혀 무관한 것이었으며 교회와 세상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이원적 사상으로 일관돼오다가 제2차「바티깐」공의회 이후 비로소 교회가 사회와 관련이 있음을 깨닫게 됨으로써 사회가 천주교를 수용하게 되었고 구도자가 증가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면에서 사회 참여를 활발히 전개, 그리스도교 정신을 드러내야 하며 이것이 바로 토착화라고 생각합니다.
▲梁=저는 입교하기전 천주교를 볼 때 한국인이 서양탈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입교 후에도 이러한 느낌의 변화에는 큰 차이가 없었으며 토착화가 수용되지 않은 사제교육을 인한 결과로 서구화한 사제들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과거에 어두운 점이 많았으나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을 걱정하고 진단해주셨으면 합니다.
▲具=2백주년 이후가 걱정입니다. 2백주년에 교황성하가 다녀가시고 여러 행사 등으로 많은 입교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매력을 느끼고 몰려들 구도자들에 대한 대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자로서 교회에 참여해 보면 애로를 느끼게 됩니다. 실제로 60~70년대에 이른바 사회참여 운동의 결과로 얻어진 많은 청년입교자들이 지금 실망하여 탈락한 현상은 좋은 실례가 될 것입니다.
형세 질서의 쇄신에 부단히 관심을 둬야 하는데 사회참여에 대해 선언만 해놓고 교회울타리안에 집착, 사회안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회에는 봉쇄수도회도 있어야 하지만 아울러 현세질서를 쇄신하는데 계속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梁=오늘의 한국교회를 점검하기 위해서 우리는 파견된 존재인데 이 땅에 파견된 존재로서 복음의 원점에 제대로 서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崔昌=구세사적으로 볼 때 가슴 아픈 일이지만 우리는 특히 종교를 신의 영역에서 안주하려는 그러한 카테고리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복음선포라는 것을 인간화라는 것으로 내세우고 싶습니다. 그리스도화 이전에 정말 살과 피를 가진 인간화가 필요한데 여기서 인간화란 것은 구세사에서 나타나신 그 하느님과 만난 인간, 바로 그 볼 수 없는 하느님을 이세상에 사는 인간이라는 의미에서의 인간화가 복음선포의 대상이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 것 인가는 바로 현대에 사는 이웃과의「나눔」이라고 보겠습니다. 이 나눔이라는 것은 이 사회가 같은 운명의식을 가져야 가능합니다.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볼 때 특권의식의 포기라고 보고 싶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고통을 수락하는 것입니다.
인간차원에서 볼 때 고통을 정말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을 살면 토착하는 이루어지는 것이겠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수용한다는 의미에서 토착화가 이루어져야지 한국문화에 흡수당한다는 의미의 토착화는 곤란합니다.
▲沈=교회는 바로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는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개체화시켜 놓고 판단하기에 앞서 내가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할바가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나자렛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는 하느님나라를 위해 살았으며 하느님의 나라는 내세의 왕국이라 가르치지 않고 바로 당신이 사람들과 만나서 당신의 사랑을 가르치고 실행 하는 데서 하느님나라가 현존함을 가르쳤습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찬들이 오늘날의 그리스도 교회가 하느님나라를 살기보다는 그들 나름의 독자적인 폐쇄된 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것은 우리들의 소임을 수행하지 않은 병폐라 볼 수 있습니다.
▲玄=교회의 지상목표는 이세상에 하느님나라를 건설하는데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교회도 2백살의 나이지만 아직 유아적인 상태에 있음을 자인치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2백주년을 계기로 평신도가 안고 있는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첫째, 평신도는 교회의 주인의식을 분명히 가져야 하겠습니다.
둘째, 평신도는 이제 성인의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아직도 기복신앙과 목적신앙에 젖어 하느님나라건설을 위한 봉사보다는 개인구령과 기복 내세주의에 머물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인의식 고취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梁=신도의 소리는 교계제도는 어디까지나 사목적이어야 하는데 과연 사목적인가 하는 것은 의문입니다. 제2차「바티깐」공의회 이후 평신도의 유일한 합법적 의견개진기구가 교구사목협의회인데 이 사목협의회를 아직도 결성하지 않은 교구도 있고, 결성은 했어도 이름뿐인 교구도 많습니다. 제2차「바티깐」공의회의자 발교령ㆍ문헌ㆍ회람장 등을 통해 강조된 이기구가 개점휴업상태인 것은 오늘의 한국교회현실의 어두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주교단과 사제단이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黃=일선 본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도자들이 오히려 평신도 활동을 방해하고 있지나 않는지 반성해봅니다. 수도자는 근본적으로 수도자 본연의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 본당에서 나오는 것이 좋을 듯 하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그에 앞서 우선 수도자들이 본당에서 교리를 지도하기 보다는 오히려 카운셀링이나 가정방문 등이 더욱 적합할 것입니다. 과감하게 평신도 지도자를 본당차원에서도 양성해야 하며 수도자는 제2선으로 물러나야 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현실에서는 수도자가 본연의 모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수도자가 원래 자기의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정신적 지도자, 고급관리직에 밀집되고 있는 현상에서 회심하고 2백주년을 계기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수도자가 결코 본당전도사일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梁=오늘의 수도자들은 자기본질로부터 기능화 존재로 넘어가있습니다. 실용화 추구에따라 수도자들이 기능적인 존재화로 변질, 근본적인 수도자본연의 자세를 잊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이사회가 기능화 돼간다고 수도자까지 기능화돼서는 곤란합니다. 수도자는 빨리 기능화에서 존재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玄=현재 각본당에 수녀들이 상주하면서 교리지도뿐 아니라 여성신도 지도자화 돼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본당에서 수녀에게 교리를 맡기고 있는데 교리신학원 출신 등 능력 있는 남자신자를 왜 활용 하지 않는지 이해가 곤란합니다. 그리고 일선 본당신부들의 업무량이 폭주하는데도 종신부제직을 도입치 않고 있는 교회의 처사는 더더욱 이해가 안됩니다. 주교단이 이 제도도입을 결심치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종신 부제직은 한국교회에 가장 절실한 제도이며 인적자원도 가장 풍부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崔昌=종신부제직은 퇴보했습니다. 제 아버님은 이미 30~40년 전 공소회장을 하실 때 말씀의 전례도 주도하였고 혼인성사도 주었었습니다.
▲梁=교회는 나눔의 공동체인데 정말로 그러한가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입니다. 정말로 교회구성원들이 나눔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沈=오늘의 사회는 유유상종의 형태에 따라 살며 집단이익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진국가들 공산권들의 결집 역시 그들의 이념을 확고히 하고 이익추구를 위한 것입니다.
교회도 이 유유상종의 법칙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구와 본당 수도회가 과감히 여기에서 탈피, 나눔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梁=한국교회는 이제 하나의 분기점에 서있다고 봅니다. 예비자 수용을 걱정할 정도로 한국교회는 외적인 성장에 들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복음적 원점에서 문제를 직시, 분석해야 할 것입니다. 신학에서 오늘의 한국교회를 보고 미래를 제시해줘야 할 것입니다.
▲具=세계적ㆍ국내적ㆍ교회적으로 까지 유유상종의 형태로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는 것은 그만큼 국내외적으로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복음이나 진리ㆍ보편성도 중요하지만 실천은 구체적 이어야 하며 희망과 가치관이 보이는 세계관을 보여줘야 하겠습니다. 인류사적 관점에서 제3세계 사목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외방선교는 하향식 계몽주의가 되어선 안될 것입니다.
▲沈=세계 정치 경제 사회 중심지역의 이동과 함께 교회사적으로도 앞으로 판도변화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교 역사를 거시적으로 볼 때 삼분화하여 보려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1천년대까지의 교회를 제1교회라 하여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교회가 중동지역이 포함된 동방교회였고 2천년대 마지막까지가 라틴교회가 주도하는 소위 제2교회가 될 것이고, 제3교회는 2천년대 이후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교회로 보고 있는데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교회가 오늘날 소위 제3세계에 속한 선교지역 교회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전망은 현 그리스도교의 상황으로서도 어느 정도 확인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구나 북미지역의 교회인구는 이탈자가 점증하고 비그리스교적인 종교내지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는데 반해서 아프리카나 인도ㆍ한국 등 제3세계 교회에서는 인구가 증가하고 교회 입교자가 느는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일고있는 정의로운 복지사회 건설에 한국교회가 얼마만큼 적극적으로 참여해왔고 참여하게 될 것인가, 그리고 한국교회가 거의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는 선진교회에 대해서 자극이 될 수 있고 출로를 열어줄 수 있는 어떤 참신학 신학사상 내지 신심양식ㆍ전례형태를 제공할 수 있겠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2백주년을 맞는 우리의 이 준비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봅니다.
▲梁=21세기에 가서는 아시아지역이 정치적으로 중심이 될 것이며 제3세계에 속한 선교지역ㆍ교회가 중심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동양전통적인 영성에 입각, 우리의 새로운 신학이 정립돼야 할 것입니다. 그 영성적 기반 위에서 서구의 신앙정체성을 탈피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80년대에 접어들면서「예언적 징후」가 퇴조되고 있는 것이 걱정이지만 은혜의 때를 맞아 한국교회의 비전을 제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玄=지금까지 2백년동안 교회는 거의 대부분 한국사회와 관련을 깊게 맺지 못해 왔고 근자에와서 조금씩 노력해 왔는데 이제는 2백주년을 게기로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와 한국민족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2백주년에 우리가「이 땅에 빛」을 심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맹인 무료개안수술도 하고 있지만 정말로 한국사회안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을 찾아 동참하는 것이「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趙=오늘의 시점에서 한국교회가 항상 복음의 원점에 서서 자기자신을 거침없이 반성하고 회심하는 자세가 기본이 돼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이익집단들이 가질 수 있는 저급한 이익추구의 경향으로부터 참답게 해방될 때 우리는 복음의 정신에서 복음을 이 땅에 선포할 수 있는 교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편 오늘날 우리교회가 가지고 있는 제일 중요한 책임은 문화의 창달 사회정의 사회복지의 실현문제 민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기여함으로써 거짓평화가 아닌 참다운 평화를 줄 수 있게 돼야 할 것입니다.
▲沈=우리교회가 밝은 앞날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참담한 모습을 추하게 드러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복음의 정신으로 되돌아가 회심하는 것과 직결된다고 보겠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속해있는 교회의 현실적인 구조가 시대의 요청과 복음정신에 부합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교회구조에 대한 반성, 복음의 빛에 비추어본 반성이 지금은 필요한 때라고 봅니다.
그래서 현 교회구조 안에서 큰 책임을 맡고 있는 분들이 과연 교회다운 교회를 살고있는지, 교회다운교회로 이끌어가고 있는지 물어야 할 것이고 모두가 그와 같은 질문을 제기할 때 비로소 빛과 소금이 되느냐 못되느냐 결정될 것입니다.
▲黃=최근 수도지원자가 많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효율적으로 교육시켜야 하는가가 장상들의 교민거리 입니다. 효율적인 양성은 한국교회는 물론 넓게는 세계교회에 기여할 수 있는 터전이 될 것으로 봅니다.
또한 수도자는「주는 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솔직이 반성해볼 때 오히려 받아만 온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2백주년을 계기로「주는 모습」으로 새롭게 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崔鏞=2천년의 교회 역사중 2백년 교회사는 결코 짧지 않은 연륜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교회의 성장 발전을 신자증가, 큰 건물, 대규모집회 등 물량적인 것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오늘 반성 비판한 것이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具=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첫째, 교회가 한국 민족의 통일 문제 위에서 교회의 십자가를 보기도 해야 합니다. 그것을 하지 않고 분단고정화를 그냥 방치하고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한국 민족의 삶의 불구성, 상처, 세계적인 분쟁의 지속을 방치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한국의 민족통일문제에서 교회가 사명을 크게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이른바 제3세계 사목운동에 관심을 가져, 동양문화전통안에있는 고유한 「평화 사상」을 가지고 세계인류평화를 위해서 기여하는 방법을 제3세계사목운동을 통해 수행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沈=우리 한국교회는 내외적인 여러불행한 여건으로 인해 초기 선각자들이 세워놓은 아름다운 전통을 지속치못하고 2백년이 지난 오늘까지 정신적인 유아기상태에 머물러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많은 교회구성원들이 우리들의 현위치를 부끄럽지않게 직시하고 있읍니다. 우리가 문제를 직시하고 있는 이상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은 어느정도 정립됐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직접 취급하지 못했던 우리자신의 고유문화ㆍ종교와의 보다 진지한 대화내지 연구가 이뤄져야 될 것이고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과학문명과의 해후가 이뤄지는 한국교회의 문제점들을 직시하며 복음의 빛에 비추어서 정신적인 사상과 오늘의 한국현실을 규정하는 요인들의 의미를 조명하고 거기서 발견되는 소외된 부분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도래한 하느님나라의 힘에 의해 변형시킬 소임을 2백주년을 맞는 한국교회가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세계 그리스도 교회가 안고 있는, 서구교회가 해결하지 못하는 숙제들을 젊은 동양문화권의 우리교회가 해결해야 할 역사적 싯점에서 있습니다. 그 문제 해결에 성공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우리가 세계교회속의 한국교회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梁=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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