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마님과 아씨는 집안에 남자라곤 하나 뿐인 서방님이 실성한 사람이라서 아무가치없이 오히려 음울한 기운만 더 짙게 하는것이며 점차 더욱 노골적으로 몰락의 음영이 짙어지는 것등에 대한 피해의식과 어떤 적개심 따위로 그렇게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인지 몰랐다.
그리고 기섭이 명확한 천출(賤出) - 오 영감네의 세전노비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더불어 그녀들에게 가학적 심성을 가지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뭏든 기섭의 고달프고 고통스러운 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런속에서도 다음해 기섭에게는 한가지 즐겁고 재미나는 일이 생겨났다. 그것은 애기씨와의 공부 놀이였다. 애기씨는 선생님이 되고 기섭은 학동이 되어서 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이를테면 연극놀이 같은 것이었다.
기섭보다 한 살이 적고 국민학교 4학년인 애기씨는 깜찍하고 귀여웠다. 깔밋한 얼굴에 서글서글하고 초롱초롱한 눈빛이었으며, 언제나 하얗고 깨끗한 모습이었다. 마음씨도 곱고 착했다. 뼈대있는 양반에다가 부잣집인 오 영감네의 금지옥엽 같은 외동딸이었지만 한군데도 드세거나 모난데가 없었다.
온갖 귀염을 다받고 떠받들어 주는 속에서 자라났으며 마냥 그렇게 살면서도 자기밖에 모르는 행투는 조금도 없었다. 기섭에게도 언제나 호의적이고 동정적이었다. 기섭이 힘에 겨운 일을 하고 바삐 움직일때는 안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으며 더우기 어른들로부터 꾸중을 듣거나 매를 맞을때는 상심스럽기조차 한 안색으로 측은히 바라보곤 하였다. 아무래도 곱고 여린 마음씨 때문일 것이었다.
그런 애기씨의 이름은 영주였다. 그러나 그 이름은 아씨와 마님만이 부르는 이름이었다. 목소리가 가랑잎 구르는 소리같은 어른 머슴도, 집안 일을 하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도 애기씨라고 불렀다. 마을 어른들 중에도 그렇게 부르는 이들이 많았다. 마을 어른들 중에는 영주애기씨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고 그냥 애기씨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기섭도 노상 애기씨라고 불렀다. 그리고는 집에서는 언제나 애기씨에게 존댓말을 하였다. 마님과 아씨의 엄한 가르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밖에서는 애기씨에게 확실한 존댓말이 되어지지 않았다. 마을 아이들과 같이 있을때는 불편스러워서 되도록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말을 할때는 존댓말 비슷하게 말을 하였으며, 때로는 불분명한 말을 하였다. 그러다가 마님과 아씨에게 들켜서 혼이 난 적도 있었다. 물론 그 때도 애기씨는 미안하고 측은한 얼굴을 하였지만, 그러나 애기씨는 웬지 기섭이 존댓말을 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기섭이 불분명한 말을 할때는 기분 나빠하는 표정인 것도 같았다.
하지만 기섭은 그런 영주애기씨가 조금도 싫지 않았다. 그의 눈에도 애기씨는 깜찍하고 귀여웠다. 애기씨의 깔밋한 얼굴과 초롱초롱한 눈, 하얗고 깨끗한 모습이 그의 마음에도 몹시 사랑스러웠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귀염을 받고, 어른들로부터도 떠받들리고 호강하며 사는 애기씨가 부럽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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