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5월 27일에는 옥중에서 사망한 김 바르바라와 이 바르바라라고 하는 두 명의 여성이 있었는데, 그들은 당시 유행하던 염병(染病 ㆍ 장티푸스)에 걸려 신음하다 죽어갔던 것이다. 사실 당시 체포된 교우들은 고문이라는 형벌보다도 굶주림과 목마를, 그리고 염병이라는 몹쓸 병으로 더욱 고생하였다. 이것은 일종의 부란성 열병(腐爛性 熱病)으로 너무나 좁은 감옥에 많은 사람들은 투옥한데서 발생한 것이었으며, 그곳을 말할 수 없이 불결하게 방치한데서 오는 독기였다.
김 바르바라는 1805년 순조5년) 시골에서 아주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본성은 순실 (淳實) 하고 신뢰감 (信賴感) 이 있었으며, 그의 부모와 동생은 비록 선교의 도리를알고 있었으나 독실하게 불행하지는 않고 있었다. 13세때에 이르러 서울에 살고 있던 황 마리아라는 부유한 교우의 집에 식모로 들어간후 비로소 입교하였으며 오륙년간 일심으로 천주를 봉행할 수 있었다. 김 바르바라는 일찍부터 동정지키기를 원하였으나 하루는 아버지가 찾아와서『훌륭한 자리가 나서 나는 벌써 승낙을 했으니 너도 시집갈 준비를하라』고 하며 마치 상대자가 교우청년인것처럼 꾸며댔다. 이에 그녀가『나는 동정을 지키고싶어요』라고 하면서 자기의 뜻을 이야기하니,이버지는 만단으로 달래며『혼인하여 부부가 함께 봉행하면 방해함도 없을것이고 네자신이나 부모나 동생들을 위해서도 유익할 것이다』라고 하여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하는수없이 그녀가 결혼을 하고보니 교우라고 생각하였던 남편은 아주 완고한 외교인이었다. 김 바르바라는 그를 입교시키려고 동거 15년동안 남편을 예로써 섬기며 항상 권면하였으나 결국 성공치 못하였다.
남편과의 사이에 여러자녀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부사이는 점점 불합하였으니, 그 고초는 이루 형언키 어려운 것이었다. 아침내 남편은 귀화하지못하고 말년에는 빌어먹다가 객사하였다. 김 바르바라는 그딸 가운데 하나만을 개종토록 할 수가 있었으며, 진심으로 교리를 봉행하여 한결같이 화평한 마음을 갖고 생활하였다. 그때 마침 조선에 새로 들어온 선교사들을 알게되어 성사를 받고 더욱 열렬히 기도와 착한일에 전념하였다. 교우들은 이러한 그녀를 거저 바르바라라고 불렀으며 또한 진주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도 유명하다.
기해박해가 일어난 1839년 2월에 김 바르바라는 그가 살던 진주인들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으로 압송되었다. 포장은 그녀에게 배교하라 하였으나 거절하고, 교우들을 대라고 하였으나 그것도 거절하였다.
포졸들에게 그녀는 주뢰(周牢)를 틀리고 곤장을 맞아 팔이 부러지기 까지 되었다. 형조로 옮겨진 후에도 김 바르바라는 시종 신앙을 고백할 뿐 굴하지 아니하였다. 고문을 당하여 부러진 그녀의 사지는 영영 낫지를 아니하였으며, 이에 더하여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고통을 겪어야 하였다. 3개월이상이나 그러한 고통 속에서 지내던 김 바르바라는 염병에 걸려 옥중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으니, 이때 그의 나이 35세였다.
김 바르바라와 같은날 옥중에서 순교한 이 바르바라는 이제 나이가 열다섯살밖에 안되는 동정녀(童貞女)였다. 그녀는 1825년 (순조25년) 서울 청파동에서 부모형제가 모두 교인인 집안의 딸로 태어났으나 어려서 일찍 양쪽부모를 모두여의었다.
이 바르바라의 천성은 온순하고 아주 다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려서부터 열심하여 가난을 참는 덕이 있었다고 한다.
의탁할 데가 없어진 그녀는 숙모들에 의하여 키원지게 되었는데, 그들이 바로 후에 순교한 이 막달레나 (李英喜) 와 이 바르바라 (李貞熹) 였다. 그러므로 이바르바라는 오직 천주를 사랑하다가 며칠 동안에 천국에 오르기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던 간선자 (揀選者) 라고 볼수 있을 것이다.
2월에 그녀는 체포되어 포청에서 고문을 당하던 중에 어린나이와 가냘픈 여성의 힘을 초월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교황청 조서 (調書) 에는「포도청에 끌려가서 무수한 형벌을 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형조로 옮겨져서는 형관 (刑官) 이 때로는 엄포하고 때로는 달래어 배교를 시키려 하였으나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으며, 용렬한 말을 한마디도 히지 않고 지조를 굽히는 표정도 절대로 보이지 아니하였다.
이에형관은 『나이어린 것이 요물하다』고 경탄 하였으며, 동정심이 일어 형조에서 처벌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명목을 붙여 포청으로 되돌려 보냈다.
바르바라와 같은 감옥에는 그와 동갑나기인 어린이들 셋이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 권면하고 의지하면서 굶주림과 목마름의 날들을 이겨냈다.
그러던중 이 바르바라는 불행히도 염병에 걸려 1개월여 동안 병고로 신음하다가 숨을 거두게 되었으니 마지막 순간까지 신앙을 지키던 순교 복녀 (福女)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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