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씨의 처지를 부러워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기섭에겐 있었다. 감히 부러워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만약 자신따위가 애기씨의 귀하고 복된 처지를 감히 부러워한다면 어떤 흠이 생겨날 것만 같은, 그런 얄궂고도 이상야릇한 마음도 있었다.
하여튼 그느 애기씨가 사랑스러웠다. 애기씨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이 싫지 않았다. 애기씨로부터 하댓말을 듣는것도 별로 나쁘지 않았다. 물론 밖에서 마을 아이들과 같이 있을때는 되우 불편하고 부끄러웠다. 너무 거북하고 곤혹스럽기도 해서 숨고 싶은 심정이기도 하였다. 더구나 아이들로부터 심히 업신여김을받을 때는 그지없이 슬퍼지는 마음이었다. 여줄가리 천덕꾸러기로 뚜벵이 (바보) 소리를 듣고 시절 (멍청이)로 취급받는 것은 더없이 슬퍼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집에 있을 때는 마음이 편했다. 애기씨와 단둘이 있을 때는 안온하면서도 설레이는 마음이었다. 애기씨를 극진히 떠받들어 주고 싶은 마음도 가슴에 그득하였다. 그리고 그는 애기씨와 자주 같이 있고 싶었다. 애기씨와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을 가슴에 꼭꼭 채우며 그는 나날을 기대하는마음으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몹시도 청명한 봄날 오후였다. 기섭이 한 가지일을 마친 다음 행랑채 마루 끝에 잠시 쉬고 앉아 있으려니까 학교에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난 애기씨가 별안간 공부놀이를 하러 가자는 것이었다. 기섭은 공부놀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로 가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거역할 수가 없어 어줍게 대답하고 애기씨를 따라 나섰다. 애기씨의 손에는 책 한권과 공책, 그리고 연필 한 자루가 들려져 있었다. 기섭은 야릇한 기대와 두려움 같은 것이었다. 기섭은 야릇한 기대와 두려움 같은 것이 가슴에 차올랐다.
애기씨는 기섭을 이끌고 뒷동산 숲속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애기씨는 양지바른 잔디밭에 자리를 잡았다. 책과 공책과 연필을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 애기씨는 근처에서 싸리나무를 꺾어 회초리 같은 것을 한 개 만들더니 그것을 옆에 놓고 잔디 위에 한 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단정하고도 어른스러운 모습이었다.
기섭은 애기씨가 대체 어쩔려고 저러나, 공부놀이란게 무엇일까, 재삼 야릇한 기대와 두려움을 가지며 그리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애기씨를 바라보았다. 그러며 그는 엉기주춤 하였다.
애기씨는 깔밋한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채 기섭을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난 네 선생님이야. 난 네 선생님이 돼가지구 너한티 글을 가르칠거야. 꼭 그러구 싶어』
『너는 학교에 다니지 않잖니. 그래서 글을 모르잖니. 난 니가 불쌍혀. 학교에서 우리선생님이 그러셨는 데,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랴. 넌 오늘부터 나한티 글을 배워야여』
애기씨는 이렇게 말하더니 회초리를집어들고, 『이건 공부놀이가 아니구 증말루 공부를 허는 거여. 니가 만약에 공부를 게을리 허거나 한번 배운걸 까먹구 허면 이 회초리루 네 손바닥을 때릴랴. 알었니?』
하며 야무진 표정을 하였다. 그러나 애기씨의 발그스름해진 얼굴에는 지레 재미스러워 하는 웃음기도 엷게 어려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곧 방실방실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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