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평신도 액션활동의 효시이며 어쩌면 현존하는 한국 가톨릭교회 액션단체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우륙회(友六會)」. 출발연대도 정확하지 않고 출범부터 지금까지 60년 가까이 전승해오면서 회장도 회칙도 없이 완전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해오면서도 오늘날 대구교구발전의 초석으로, 또한 원동력이 돼온 우륙회의 태동은 1911년 대구교구가 설정된 후 한창 교구의 기반을 닦고 있던 192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륙회는 1924년 7월 발족을 노「조선남방 천주공교 청년회(朝鮮南方天主公敎 靑年會)」의 전성시대인 1925년~28년경이 청년회의 중년간부이던 당시 20대의 젊은 엘리뜨 6명이 뜻을 모아 조직했다. 「벗 여섯명의 모임」이란 뜻의 우륙회 창립회원은 이들 6명과 동년배의 친구이며 일본유학으로 창립회원엔 들지 못했으나 1930년 제일 먼저 입회한 한솔 이효상씨에 따르면 徐廷燮·李仁福·金周錫·崔福萬·崔再福·權五勳씨 등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륙회 회원이며 영남교회사연구소장인 윤광선씨에 따르면 27~28년경 회 창립 후 6명이 함께 촬영한 각각 다른 두 장의 기념사진에는 金周錫·權五勳씨가 빠져있고 이들 대신 金鐘華·金榮台씨가 들어있어 창립회원 역시 부정확하다.
이처럼 우륙회의 창립연대나 창립회원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은 회자체가 회칙도, 회장도 없어 자연히 기록이 없는 점과 창립회원 중 유일한 생존자인 崔再福씨(81세)가 벌써 몇 해 전부터 생명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 전혀 증언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기념사진상에 나타나있는 6명의 신분을 살펴보면 먼저 李仁福씨는 조선 남방 천주교청년회가 발족되기 이전 1913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海星체육단(1920년 12월 해성청년회로 변경)시절부터 멤버로 활약했고 1927년 4월 1일 남방 천주교청년회(회장·최정복)가 창간한「天主敎會報」(가톨릭新聞前身) 편집동인이었다. 徐廷燮씨는 청년회의 서기이며 역시 천주교회보 편집동인이었으며 최봉도 신부의 부친인 崔福萬씨는 청년회총무와 천주교회보 총무를 겸임했었다. 그리고 金鐘華씨는 청년회 재무이며 海星學院]강사였고 崔再萬씨는 海星樂隊長이며 천주교회보 편집동인었고 金榮台씨는 海星學校의 설립자인 김찬수씨의 맏아들이었다.
이들 6명이 우륙회를 조직하게 된 정확한 경위나 배경은 알 수 없지만 당시 청년회가 맡아하던 천주교회 보편집과 해성학교 강사·해성악대·교구 전신자 운동회·매년 성탄때의 성극공연 등을 추진하면서 연령이나 학력 그리고 경제사정이 비슷한 젊은이들이 자기수련과 교회발전을 위해 모임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이들 창립회원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국가적으로는 일제의 식민치하로 일제에 대한 저항과 민족의식 자각운동을 스포츠·언론·야학 등을 통해 전개했으며 교회적으로는 당시 젊은 엘리뜨들의 교회내외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외국인성직자들로 인해 이들은 이중의 압력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들 창립회원들이 교회내·외부로부터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계속해낸 해성여자야학은 대구교육계에서 문맹퇴치의 첫 기록이며 해성악대는 대건학교로 전수되었고 이들이 시작한 성탄때의 성극은 이제 전통으로 굳어지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시작한 운동회는 교구가 지난 80년 제34회 교구체육대회를 개최하는 시발점이 됐으며 천주교회보는 오늘날 가톨릭신문으로 성장해 교구의 벽을 넘어 한국전체교회와 나아가 세계교회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이처럼 일제에 대항, 민족의식계몽과 일치단결을 고취시키고 교회내적으로는 신자들의 신심앙양을 위해 회원각자가 전심전력했지만 어디까지나 우륙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회의 이름을 걸고 한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러한 전통은 60년이 가까이 온 지금도 변함이 없다. 현재 생존해있는 회원은 회장격인 이효상씨를 비롯 주병환·김영석·김점묵·이태재·조천수·박성곤·김인석·김도영·남옥현·김재근·김달호·민윤기·윤광선·홍성항씨 등 15명인데 회원 한사람 한사람이 교구발전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거나 아직도 평신도원로들로부터 현역으로 뛰고 있지만 이들이 우륙회 회원인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회보다는 회원 각자가 교회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간에는 우륙회가 액션단체가 아니라 친목단체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우륙회는 그러한 의혹에 조금도 아랑곳 없이 매달 한차례씩 모임을 갖고 신자들의 신앙심화와 교구발전을 위한 진지한 대화를 계속해오고 있다.
또 매달 납부한 회비가 남으면 불우이웃돕기도 하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새얼학교와 희망원 및 칠고피부과의원 환자들에게 성금을 전해주기도 했다.
우륙회의 입회자격에 대해『보통 65세 이상으로 살아들어가 죽어나온다』고 노안을 활짝 편 한솔선생은 지난 5월 처음으로 그 동안 작고한 10명의 회원들을 위한 위령미사를 봉헌했다면서 매년 이미사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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