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랑 추기경은 가는 곳마다 이웃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해박한 지식으로 종교인들 간의 만남에 새로운 물꼬를 터나갔다. 4박5일간의 방한 일정을 함께하며 종교간 대화의 의미를 돌아본다.
◎… 토랑 추기경은 한국 방문 이틀째인 5월 24일 오전 11시 서울 견지동 조계사 조계종 총무원을 방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종교간 대화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나갔다. 그는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의 만남에서 “부처님 오신 날 경축 메시지를 보낸 것은 불교에 대한 천주교의 우정의 표시”라며 오는 10월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열리는 ‘세계종교지도자평화회의’에 초청하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서한을 전달했다. 이에 자승 총무원장은 불교계에서 준비하고 있는 2013년 ‘세계종교지도자포럼’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했고 토랑 추기경은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꼭 참석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는 “한국사회도 첨단화됐지만 영적 부분은 여전히 중요하며 한국불교의 전통문화를 높이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토랑 추기경에게 종을 선물하고 있다.
◎… 조계사를 떠나 낮 12시 서울 궁정동 주한 교황대사관에서 이슬람교 이행래 이맘을 비롯해 천도교 임운길 교령, 원불교 교정원장 김주원 교무, 대한성공회 윤종모 주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영주 목사 등 7대 종단 대표들과 만난 토랑 추기경은 종교간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 연설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종교간 대화란 서로의 차이점 혹은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것과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조율점을 찾아 서로 의견을 논의하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역설하고 “다르다는 것은 사회 안에서 사회의 다양성, 풍부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에 온 목적은 여러분들에게 배우고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 토랑 추기경은 25일 오전 10시 성균관 총부를 방문하는 것으로 방한 일정을 이어나갔다. 그는 최근덕 성균관장을 만나 “한국사회에서는 조상 숭배 논의가 활발하고 젊은이들이 자신의 뿌리에 애착이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동행한 김희중 대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장)는 “한국천주교회는 설과 추석, 기일 제사를 인정하고 다만 ‘신위(神位)’라는 표현만 금지한다”고 설명했다.
▲ 토랑 추기경이 최근덕 성균관 관장과 대성전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토랑 추기경은 명동성당으로 이동해 오전 11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을 만났다. 지난 2006년 정 추기경의 서임식에 자리를 같이 한 인연을 떠올리며 반가움을 표시하자 정 추기경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서울대교구장으로 13년 동안 매년 10개의 성당을 짓고 건축비용을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았다는 정 추기경의 설명을 듣고 토랑 추기경은 유럽에서는 사람이 없어 성당이 팔리고 있는 실정이라며 한국교회에 놀라움을 표하기도. 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 300여 명의 신학생 중 매년 30여 명의 새 사제가 탄생하며 명동성당에서 매월 250명이 영세하고 주일미사에는 신자들이 길게 줄을 서서 미사 시간을 기다린다는 한국교회의 상황도 설명했다.
▲ 정진석 추기경과 토랑 추기경.
◎… 명동성당을 떠난 토랑 추기경은 문화체육관광부 정병국 장관이 마련한 오찬에 참석한 데 이어 오후 4시40분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을 찾아 교직원과 신학생 등 400여 명을 대상으로 ‘동북아 평화를 위한 종교간 대화의 역할’을 주제로 강의했다. 특히 이날은 성신교정 개교 156주년이 되는 날이어서 토랑 추기경의 방문이 더욱 뜻 깊었다.
토랑 추기경은 강의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2005년 8월 독일 쾰른 방문 연설을 인용하며 “종교가 편협하고 완고하다는 비난에 대해 종교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거나 하나의 종교를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둘 다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하느님의 현존과 하느님을 찾을 인간의 권리를 부인하는 견해들에 맞닥뜨렸을 때 하나의 대책으로 솔직하고 진정한 종교간 대화를 제시했다. 강의 후 질의응답 시간에는 종교간 대화에 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자세와 이슬람과의 대화에서 배울 수 있는 덕목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토랑 추기경은 “예수님이 나의 유일한 구원자이자 중개자라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고 이슬람으로부터는 엘리트층이 보여주는 타 종교에 대한 개방성과 대화의 노력을 배워야 한다”고 답했다.
▲ 신학생들의 환영을 받으며 토랑 추기경이 가톨릭대 성신교정에 들어서고 있다.
▲ 토랑 추기경이 가톨릭대 성신교정에서 종교간 대화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방한 나흘째를 맞은 토랑 추기경은 26일 오전 9시30분 절두산순교성지(주임 변우찬 신부)를 찾았다. 한국순교성인시성기념 교육관에서 절두산순교성지 소개 영상을 시청한 토랑 추기경은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27위의 성인과 1위의 무명 순교자가 모셔진 성해실을 찾아 장궤한 채 기도를 드렸다. 특히 성해실에는 토랑 추기경과 같은 프랑스 보르도교구 출신인 볼리외 루도비코(한국명 서몰례) 신부도 모셔져 있어 토랑 추기경은 볼리외 루도비코 성인의 명패 앞에서 한참 명상에 잠긴 모습이었다. 성해실에서 주모경을 바친 후 토랑 추기경은 절두산순교성지성당에서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 김희중 대주교, 변우찬 신부 등과 10시 미사를 집전했다. “절두산성지에 오니 남다른 감회를 느낀다”는 말로 강론을 시작한 토랑 추기경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 순교자들과 같이 불굴의 신앙을 지니려면 지극히 높은 데서 오는 힘이 필요하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다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며 위안”이라고 말했다.
▲ 미사를 집전하며 성체를 나눠주는 토랑 추기경.
◎… 토랑 추기경은 한국 방문 마지막 일정으로 이날 오후 경복궁을 관람했다. 그는 “조선 마지막 왕의 후손이 지금도 살아 있느냐?”며 한국 역사에 관심을 표하고 “사람은 자기 뿌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토랑 추기경이 경복궁 경회루를 관람하고 있다.
■ 장 루이 피에르 토랑(Jean-Louis Pierre Tauran) 추기경 약력
1943년 4월 5일 프랑스 보르도 출생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 수학
1969년 사제 서품
1973년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 교회법 박사 학위
1988년 국무원 외무부 차장
1991년 1월 6일 텔렙테 명의주교와 국무원 외무부장 임명
2003년 10월 21일 부제급 추기경 서임
2007년 6월 25일부터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