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원전에서 반경 20㎞ 이내 지역에는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될 만큼 방사성 물질이 퍼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나서서 주민들이 타지역으로 집단 이주를 하도록 종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지역 주민들이 주로 농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 다른 지역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무런 전망이 안 보인다. 이주하여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해 아직 일본 정부도 지방자치단체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농수산물 생산자뿐만 아니라 유통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사업상 큰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서는 직접적으로 출하하지 못하는 농수산물의 피해뿐 아니라 ‘풍평(風評)에 의한 피해’도 보상의 대상이 된다고 보고 있다. 곧 실제로는 오염되지 않은 지역의 농수산물까지 소문이나 미디어의 부정적인 보도에 따라 소비자들에게서 완전히 외면받는 경우다.
그리고 정신적 고통도 피해보상의 대상이 된다. 이뿐만 아니라 원전사고 때문에 실제로는 200㎞ 이상 떨어진 수도권에서조차 관서지방으로 이동하는 가족도 증가했다. 이런 이들의 이사비용, 피난비용도 보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원전사고 때문에 발전량 부족이 빚어지고 있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계획정전이 실시되고 있으나, 아무리 사전에 예고를 한다 하여도 한 지역이 통째로 정전이 되면 영업상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는 사업체가 적지 않다. 이에 대한 보상도 거론되고 있다.
이런 드러난 피해에 대한 보상액만 따져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될 것이다. 그래도 원자력 발전이 경제적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일본이 1960년 4월 일본 과학기술청의 위탁을 받고 일본 원자력 산업회의가 작성한 비밀문서 ‘대형원자로 사고의 이론적 가능성과 공중손해액에 관한 시산(試算)’에는 이바라키현의 ‘동해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일본 정부가 그 피해를 보상할 수 있을까, 보험회사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한 보고서가 포함되어 있다.
이 보고서는 최소한 1조 엔의 손해액이 발생할 것이며, 이러한 원전재해에 관하여 보험회사가 피해액을 지불할 능력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때문에 전력회사는 일본 국내 손해보험회사들이 만든 ‘일본 원자력보험 풀’에 가맹하여, 원전 1기당 1200억 엔까지만 배상금을 지급할 의무를 지니는 것으로 제한하였다. 곧 배상책임에는 상한선이 있고, 그 보험을 초과하는 손해에 대해서는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보상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외국의 ‘원자력보험 풀’은 일본의 지진에 의한 원전재해를 두려워하여 지진을 포함한 손해의 재보험을 수용하지 않았다. 일본 ‘원자력보험 풀’의 보험에서도 가장 일어날 가능성이 짙은 ‘지진에 의한 원자력 재해’를 보험의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당장에 생각할 수 있는 경제적인 피해일 뿐이다. 그런데 방사성 물질 누출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인체에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후발성 방사능 후유증’까지 합치면 총 70여 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86년 발생한 체르노빌 사고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가 2006년도 공식 집계에서 밝힌 사망자 수는 초기 대응 과정에서 56명, 1986년에서 1987년 사이에 투입된 22만6000명의 작업자들 중 2만5000명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백혈병과 갑상선암 등으로 고생한 환자들의 수는 정확한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방사능은 자연계의 먹이사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핸포드 핵폐기물 재처리 공장에서 나오는 배수가 흘러들어가는 콜롬비아 강에서 측정한 결과에 따르면 강물에서 측정된 방사능이 1이라고 할 때 플랑크톤에는 2000배 농축되고, 그 플랑크톤을 먹는 물고기에는 1만5000배 농축되었고, 그 물고기를 먹은 오리에는 무려 4만 배 농축되었음이 드러났다고 한다. 방사능은 이렇게 자연계 안의 먹이사슬 안에 진행될수록 엄청나게 농축된다.
오늘날 화학물질인 식품첨가물이나 농약성분이 인체에 얼마나 큰 해를 끼치는지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의식하며 식재료 선택에 신경을 쓴다. 그러나 방사성 물질은 그보다 훨씬 더 나쁘다. 왜냐하면 방사성 물질은 그 수명이 거의 영구적이기 때문이다.
세슘 반감기는 30년, 스트론튬 반감기는 29년이며, 플루토늄 반감기는 약 2만4000년이라고 한다. 세슘은 나트륨과 섞여 인체에 흡수되고 각종 암이나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하고, 스트론튬은 칼슘과 비슷해 뼛속으로 흡수되어 골암이나 백혈병을 유발한다. 2009년 오바마 정권 탄생 직후에 미국 정부는 “고농도 방사성 물질은 100만 년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발표하였다.
방사성 물질은 다른 무엇으로도 통제나 제거가 안 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당한 한국인 생존자의 2세들은 같은 나이의 일반인에 비해 빈혈 88배, 심근경색과 협심증 81배, 우울증 65배, 정신분열증 23배, 천식 26배, 갑상선 질환 14배로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방사능은 인간의 건강에 이렇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강한 독성을 지닌 물질이지만, 이것을 차단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방사능은 인간이 어떤 기술로도 통제가 가능하지 않은 대재앙이다.
▲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원전 부근에서 가와마타 피난시설로 대피한 사람들 사이로 한 노인이 망연자실한 모습을 하고 있다.
▲ 히타치 공립복지센터에서 한 여인이 방사능 노출에 대한 우려로 의료진들로부터 검사를 받고 있다.
■ 원자력 발전의 윤리성
“환경은 하느님께서 모든 이에게 주신 선물로서, 이를 사용하는 우리는 가난한 이들과 미래 세대와 인류 전체에 대한 책임이 있다. …자연환경은 우리가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원료 이상으로 소중한 창조주의 놀라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에는 그것을 무분별하게 착취하지 않고 현명하게 사용하기 위한 목적과 기준을 알려주는 ‘공식’ 이 담겨있다”(진리 안의 사랑, 48항).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곧 동물이나 식물이나 무생물이나, 자연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아름답고 조화로운 선물이며 인간은 이를 보호하고 온전히 지켜나갈 사명을 부여받았다. 아무리 무생물이라 해도 인간이 자기 원대로만, 자신들의 당장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서 고갈시키거나 탕진해서는 안 된다.
모든 피조물 안에는 각 사물의 본성이 있고 또 우주 안에서 다른 피조물과의 상호 질서와 연계가 있다. 그런 본성과 질서를 무시하고 인간의 탐욕에 따라 자원을 고갈시키거나 탕진하면 자연계 자체의 본성과 질서가 인간을 응징한다(사회적 관심, 34항 참조).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자연계의 지배는 절대 권력이 아니다. 자원의 개발과 이용에는 지켜야 할 도덕적인 요청이 따른다. 우리는 자연계의 이용에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
태초부터 창조주 친히 설정하신 한계, “그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마라” 하시는 금령에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권리에 한계가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창세 3,16-17 참조). 이는 “우리가 자연계를 대할 적에 그 생태학적인 법칙만이 아니라 도덕적인 법칙에 귀속됨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이를 위반할 적에는 반드시 징벌이 따르게 되어있다”(사회적 관심, 34항).
핵분열을 통한 원자력 발전은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자연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인간의 기술로 통제가 불가능하고 제어가 안 되는 방사성 물질을 끊임없이 양산한다. 핵폐기물은 거의 영구적으로 방사능을 지닌 채 존속하고 그것은 땅속이라고 하지만 계속 쌓여만 간다.
지하의 토양과 지하수가 방사능에 오염되면 생태계 전체와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으며 아무런 해결방법이 없다. 몇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생존권이 달린 문제다. 이제는 원자력 발전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다른 길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해충을 죽이려고 DDT를 즐겨 사용했다. 집을 지을 때 석면을 온 사방에 넣고 방음, 단열재로 썼다. 그러나 이런 물질들이 사람의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사용을 중단했다. 원자력은 그런 화학물질들보다 훨씬 더 위험한 물질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편익과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물질을 만들어내서는 안 된다. 에너지를 무한정으로 쓰기만 하려는 현대의 문명을 재고하여야 한다. 우리 자신의 소비지상주의 문화를 심각하게 재고하여야 한다.
일본은 자판기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자판기에 대한 재고가 거론되고 있다. 24시간 돌아가는 자판기만 없애도 원전 하나를 폐기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도 에너지 사용을 해마다 늘려가는 현실을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우리는 미래의 세대에게 결코 고갈되고 파괴된 자연을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미래 세대 역시 계속해서 이 땅을 일구며 거기에서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 땅을 보존하여 물려줄 막중한 의무가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진리 안의 사랑, 50항).
▲ 완전한 통제·제거가 어려운 방사능에 대해 실질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사진은 지난달 4일 열린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합동미사·범시민 촛불문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