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안주교도 일에 있어선 빈틈이 없다. 「얼렁뚱땅」을 절대 허용치 않는다. 매사에 철두철미. 몇년전에 신학생들에게 유전자 공학에 관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의 준비를 위해 정독한 참고문헌이 20여권. 이는 아직도 전설처럼 신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 1997년 부산가톨릭대학 제1회 졸업식 후 교수단과 함께 기념촬영했다(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 안주교의 어머니 방경달(아녜스) 여사는 아들 신부가 주교가 됐다는 소식에 『기쁨보다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안주교는 20년에 가까운 신학교 생활이었지만 한번도 이 소임을 소홀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한다. 『교회의 명에 순종하는 것은 사제의 기본 임무입니다. 특수사목이니 본당사목이니 하고 분류하는 것은 별 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제다운 삶을 살고 이를 유지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깥을 드러내기 보다 항상 조용한 성품을 지닌 안주교. 이러한 안주교의 성품을 두고 신학생들은 안주교의 성(姓)인 안(安)자가 「편안할 안」이 아니라 「안방 안」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이 말은 화려하지 않은 안주교에 대해 친근감을 표현하는 말이다. 바둑을 둘땐 안주교가 지면 1만원을 학생에게 주고, 이기면 담배 1갑을 받는 내기를 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마산교구 남지본당 김정훈 신부가 신학생때 진 담배빚(?)은 무려 7000갑에 달한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처럼 엄격함과 다정함을 두루 겸비한 안주교는 항상 신학생들과 함께 사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노력하는 모습만 보이면 모든 것을 이해해 주는 안주교가 많은 신학생들의 존경의 대상이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
안주교는 『대과(大過)없이 20년에 가까운 신학교 생활을 하도록 이끌어주신 하느님과 지인(知人)들에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해싿.
안주교는 「검소함」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학장에게 주어지는 관용차도 공적인 일에만 사용하며 보통 때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주로 이용한다. 오디오도 독일 유학시 사용하던 것. 보다 못한 후배 신부가 최근 중고 오디오를 선물했다 한다. 올해가 은경축이었지만 축하행사를 굳이 사양, 신학생 들이 조촐한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 행사의 전부. 20년된 바지도 입고 다니며 축일 때 받는 선물은 모두 제자들의 몫이었다 한다.
1977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교 대학원에서 논문 「예수와 재물(富)」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안주교는 광주가톨릭대학에서 윤리신학과 철학적 인간학을 부산가톨릭대학에서 기초윤리, 교리교수학 등을 각가 지도해 왔다. 저서로는 「윤리신학의 단편적 이해」「윤리신학의 관심사」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철학적 인간학의 기본 개요」와 「윤리의 기초」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