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및 103위 시성식, 1989년 서울 세계성체대회로 두 차례 한국을 찾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다시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전 세계를 사목순방하며 자신의 뜻을 잃지 않았지만, 순교자의 땅 한국에 보내는 그의 사랑은 지속적이었다.
한국교회를 사랑했던 교황은 한반도의 통일과 북한교회에 대한 관심도 잃지 않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던 당시 역사적 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특별 메시지를 보냈으며,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주관한 ‘한끼 굶으며 북한동포를 돕자’라는 운동에는 스스로 동참하기도 했다.
또 2002년 태풍 루사가 닥쳐왔을 때는 ‘한국인들의 고통을 함께 슬퍼하며, 용기를 내 일어서기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보냈으며, 2003년 2월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같은 해 9월 태풍 매미에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한국에 재난이 닥쳐올 때마다 연대를 표현하고, 관심과 진심을 아끼지 않은 셈이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가 일어난 직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유가족들과 대구시 당국에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 당시 교황청 국무원 장관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희생자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하고, 슬픔에 쌓인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위안이 깃들기를 기원했다”고 전했다.
태풍 매미로 인해 인명과 재산에 막대한 피해가 났을 때도 그는 위로 전문을 보내 한마음으로 슬퍼했다. ‘한국에서 태풍 매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을 느낀다’는 말로 메시지를 시작한 교황은 당시 주교회의 의장 최창무 대주교에게 정부와 구조작업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의 뜻과 연대의 마음을 전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후 파킨슨씨병으로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며 2005년 선종 때까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직접적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난 그의 노력이 한국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국교회를 사랑했던 교황,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우리는 한마음으로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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