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종교사에는 다양한 형태의 종교 공동체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2,000년에 육박하는 역사를 지닌 단일 조직이 바로 가톨릭교회입니다. 이렇게 유구한 생명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우리가 잘 아는 교구는 속지주의를 원리로 하는 가톨릭교회의 기본 단위입니다. 하지만 가톨릭교회에는 교구의 소속과는 상관없이 특별한 영성이나 활동목적을 지닌 속인주의 단체도 있습니다. 선교단체나 특별한 영성을 가진 수도회가 바로 여기에 속합니다. 교회조직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교구이지만, 다양한 교회단체들도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큰 보탬을 줍니다. 이렇게 해서 교회 전체가 단일성을 유지하면서도 생명력을 지닌 종교조직으로 발전해왔던 것입니다.
종교를 믿고 실천하는 행위가 개인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자신이 배우거나 경험한 종교적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실천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처럼 종교생활은 언제나 공동체의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물론 어떤 종교에 소속되어 있다가도 독특한 체험을 위해서 홀로 고행을 실천하거나 기도 생활을 영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도자나 신비가들이 그러한 경우에 속하지요. 하지만 이들도 결국에 가서는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에 무교회주의를 표방하였던 함석헌, 김교신 같은 분들도 엄밀한 의미에서 ‘교회 없음’을 표방한 것이 아니라, 기성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지향하였던 것입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종교조직을 시나고그(회당)와 에끌레시아(교회)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시나고그란 유대교의 종교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힌두교, 유교와 같이 혈연집단이나 사회계급 또는 민족 집단과 나뉘지 않고 합치되어 있는 종교 공동체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겠지요. 이러한 종교들은 공동체 자체의 존재만으로도 대단히 강력한 결속력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 공동체의 내부와 외부가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어서 배타적인 성향을 지니기도 합니다.
반면에 에끌레시아는 그리스말로 ‘불러 모은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즉 핏줄을 같이 하거나 동일한 계급에 속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묶인 조직이 아니라, 해탈하거나 구원을 얻기 위하여 스스로 나선 사람들이 뭉친 공동체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한국교회의 초기 신자들은 혈연과 학연으로 이루어진 합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리 학습을 위주로 하는 신자단체였던 명도회가 출현한 이후에는 자신의 노력으로 천주신앙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특별한 사람들이 교회의 토대를 형성합니다. 이로써 에끌레시아의 본래적인 모습이 더욱 잘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지요.
오늘날 한국인들은 매우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의사 결정의 구조 자체가 비공식적인 인간관계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지요.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인간적인 친밀감을 주로 내세우는 동호회 문화, 개인적인 인맥을 통하여 상품을 팔거나 경제활동을 벌이는 다단계 조직, 또는 특정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온라인 단체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조직문화가 구속받는 것을 싫어하는 현대인의 개인주의 심리와 맞물리면서 느슨한 인간관계의 망들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인터넷문화도 한몫 하고 있지요.
가톨릭교회는 이처럼 현대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네트워크형 조직문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동호회 방식의 공동체 문화에 대해서 어떠한 대안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소공동체 운동이 고민해야 할 부분도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요? 교회 안의 신심단체 활동에 익숙한 신자들이라면 소공동체 운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얽매이는 것은 딱 질색이고, 기호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편안하게 만나는 관계를 선호하는 현대의 네트워크형 인간들도 존재합니다. 이들을 위한 배려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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