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6월 1일 문을 열고 반세기가 되도록 지역사회 안 부랑인들에게 희망의 촛불이 돼준 시설이 있다. 위험 요소가 있는 이들을 격리하기 위해 마련된 이 단체가 부랑인들의 편안한 쉼터가 되기까지 반세기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남성부랑인 생활시설 ‘은평의마을’이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 감격의 50주년
서울시 중구 주자동에서 시작한 은평의마을(원장 이향배 수녀, 서울 은평구 구산동 산61-8)은 말 그대로 치한을 격리하기 위해 사용됐다. 그렇다보니 체계적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규율도 엄격해 입소자들은 보호받지 못한 삶을 살았다. 마음은 피폐해지고 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
관리를 맡은 서울시에서는 여러 어려움으로 인해 1981년 마리아수녀회에 시설을 위탁했다. 20년이라는 시간은 긴 터널과 같았다. 무법천지의 시설이 수도자들로 인해 하루아침에 변화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시설을 맡았던 알로이시오 슈왈츠 신부가 유단자들을 모집해 입소자들의 혈기왕성함을 ‘무술’이라는 바람직한 방법으로 바로잡기 시작했다.
‘갱생원’이란 이름의 시설은 ‘은평의마을’이라는 착한 이름을 달았다. 은혜롭고 평화로운 마을이라는 뜻의 은평의마을. 그렇게 시설이 변해갔다. 이후 많은 변화를 겪은 끝에 올 1월, 은평의마을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위탁, 예수의 꽃동네 자매회가 운영하게 됐다.
원장 이향배 수녀는 “지난해 은평의마을 담당 소임이 떨어졌을 때 어떻게 살아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며 “꽃동네에서 부랑인들을 많이 겪었기에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대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어려운 점은 많다. 베드로의 집 뒤편에 위치한 바오로의 집 시설이 매우 열악하기 때문이다. 장애와 치매 등 다양한 질환을 앓고 있는 가족 700여 명이 한 방에 30~35명씩 살아야 한다. 어르신들이 대부분이기에 불편함은 더하다.
내실을 바로잡는 시간 동안 외부의 후원은 거의 끊겼다. 부랑인이라는 조건이 후원자들의 구미에 맞지 않아서인지 후원자 개발 또한 어렵기만 하다. 아동·노인시설보다 부랑인 시설을 운영하기 더 어려운 이유다. 은평의마을에 대한 인식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 내 인식도 여전히 바꿔나가야 할 숙제다.
50년 동안 은평의마을을 다녀간 부랑인들은 13만7000여 명. 시설에 비해 놀라운 입소 숫자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입소 인원은 2000여 명이다.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은평의마을은 희망에 차있다. 제과제빵체험, 카페테리아 등 다양한 직업재활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부랑인들의 마음에도 꽃이 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현재 서울 역촌동본당(주임 김민수 신부)이 신자들에게 은평의마을 봉사를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는 상태다.
이 수녀는 “내 가족처럼 좀 더 따뜻한 눈으로 부랑인들을 바라봐 주시면 감사하겠다”며 “가톨릭에서 말하는 ‘서로 사랑하라’는 이야기처럼 조건 없는 사랑의 범주에 이 가족들도 넣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은평의마을은 1일 정성환 신부(서울 가톨릭사회복지회장), 오웅진 신부(예수의 꽃동네 유지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설립 50주년 기념미사와 기념식을 봉헌했다.
※문의 02-3156-6300 은평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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