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가명·6)는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사람이 없는 허공이나 사물을 향해있다. 누군가 일부러라도 눈을 맞추려고 다가서면 항상 외면해버린다.
경호는 좀체 말이없다. 어쩌다 하는 말이라곤 따라하는 말이 전부다. 『경호야』하고 부르면 『경호야』하고 대답한다. 『밥 먹었니?』하면 저도 『밥 먹었니?』한다.
경호는 잠이 없다. 새벽 3시, 4시까지 집안을 뛰어다니기 일쑤다. 가끔은 머리를 벽이나 바닥에 부딪치며 자해하기도 해 부모의 애간장을 태운다.
대인관계를 싫어하며 자기만의 세계에 틀이박혀 살아가는 자폐증이다.
최근 경호의 행동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기 시작했으며 『밥 먹었니』물으면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낮익은 사람이 있으면 제가 먼저 다가가 몸을 부벼된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달라는 몸짓도 보인다. 언어교육에 들어갈 수 있는 단계에 왔고 치료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장애아 통합교육」이 가져다준 엄청난 변화다.
구미1대학 아동복지과 부설 어린이집(원장=시옥진 베로니카). 지난 3월 학과 개설과 함께 문을 연 어린이 집에는 매주 수요일이면 인근 혜당학교의 청각장애아동과 은광 어린이집의 자폐·지체장애·정서장애 아동들이 찾아온다. 이들에게 이날 하루만큼은 장애를 잊고 평범한 또래의 아이들과 마음껏 놀 수 있는 날이다. 혹은 잊었던 장애를 자각하고 재활을 다지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 눈에는 「장애」가 없어요. 조금 불편하거나 불편해 보일 뿐이죠. 장애-비장애 구분은 어른들의 편견이지요. 때로는 장애-비장애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나아가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어른들의 마음이 더 큰 장애로 느껴질 때가 있어요. 안타까운 현실이죠』
장애아 통합교육을 시도한 시옥진 교수의 말이다. 가슴 따뜻한 교사와 아이를 배출한다는 학과 이념과 「하느님 사랑은 공평해야 한다」는 사실을 실천해보고 싶은 신앙심으로 장애아를 받아들이게 됐다.
물론 쉽지않았다. 『안했으면 좋겠다』는 학부모를 설득하기 위해 부모교육에 매달려야 했다. 실험적으로 통합교육을 시도하면서 인터넷(www.kumi.ac.kr/webcam) 실시간 자녀 관찰 시스템(CCTV)을 통해 우려를 씻어줬다.
한달만에 모두들 『해보자』로 돌아섰다. 나밖에 모르던 아이들이 장애아들과 스스럼없이 놀고 휠체어를 밀어주면서 함께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장애인을 보면 엄마 치마폭으로 숨어들던 아이들이 이제는 경계심을 버리고 평범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아가 『휠체어를 밀어줘야 한다』며 손을 끌기도 해 부모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앞서 경호의 경우와 같이 장애아들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재활의지가 높아진 것. 평소 정상아들과 어울릴 기회가 전혀없었던 장애아들이 비슷한 또래들과 어울리면서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무너뜨리고, 재활의 필요성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어·물리치료에 애를 먹이던 아이들도 통합교육을 하고난 이틀간은 치료에 적극적이다. 발달지연과 자폐증을 앓고 있는 종철(가명·7세)이는 내년에 학교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장애아들기리 모아놓으면 재활의지가 약해 치료가 힘듭니다. 정상아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아야하지요』
당연히 장애아 부모들은 통합교육을 주 2회 이상 늘려달라고 애원이다. 그래서 아예 내년에는 장애아반을 따로 개설할 예정이다. 올해도 3명의 장애으를 받기는 했지만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해 더 받을 수가 없었다. 시설을 보충하고 특수교사와 아동복지과 학생들을 투입해 1:1로 돌보게 할 예정이다.
『대학 부설 기관이나 교회에서 통합교육에 적극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장애아 5명에 특수교사가 1명씩 붙어야 하는데 영세 어린이집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남을 위하고 누구를 사랑할 줄 아는 아이, 그래서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이 사회와 교회가 바라는 교육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시옥진 교수는 『통합교육에서 그 길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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