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력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 전례는 우리에게 우리 신앙의 출발점이자 목표인 그리스도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의 모습」으로 그려준다. 고대로부터 교회는 그리스도에 관해 『홀로 거룩하시고, 홀로 주님이시며, 홀로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대영광송」에 나오는 이 고백은 오늘 우리가 특별히 기념하는 「그리스도 왕」대축일의 의미를 풀어놓은 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제는 오늘 복음 말씀을 중심으로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의미를 새겨보도록 하자. 오늘 복음 말씀의 대목은 요한복음에 의한 「수난사」가운데, 예수님이 당시 유다 지방의 로마 총독이었던 빌라도의 심문을 받는 장면 중의 하나이다. 오늘 복음에 의하면 빌라도는 집요하게 법적으로 예수를 처형할 만한 「죄목」을 찾으려고 예수께 질문한다. 『네가 유다인들의 왕인가?』(시작 구절), 『아무튼 네가 왕이냐?』(끝구절).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반문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의 응답 속에 「내 왕국」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어떤 형태로든 당신이「왕」이시라는 것을 인정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어떤 의미의 「왕」이냐는 것이다. 예수님은 즉시 당신의 왕국은『이 세상 것이 아니다』라고 밝히신다. 그것도 두 번이나 그렇게 말씀하신다(36절).
사실, 예수님은 그를 빌라도에게 고발하였던 유다인들아니, 그를 심문했던 빌라도가 생각하는 식의 왕은 분명히 아니었다. 예수님은 군대도, 권력에의 야망도, 한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의지도 없으셨다. 예수님은 결코 왕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으셨다. 예컨대, 같은 요한 복음서에 의하면 빵의 기적 후에, 사람들이 드디어 자신들이 고대해 왔던 메시아가 왔다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붙잡아 강제로라도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을 때, 예수님은 『그 낌새를 알아채시고 혼자서 산으로 피해 가셨다』(요한6,15). 그리고 그분은 이 세상 왕들처럼 남을 힘으로 내리 누르고, 남들로부터 섬김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남을 섬기는 삶을 사셨고 또 그렇게 살라고 제자들에게 신신당부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마르 10,42~45).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삶의 스타일이 어떠하였고, 그분이 제자들에게 하신 가르침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다. 비슷한 내용이 요한 복음서에서는 최후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예수님의 모습과 말씀을 통해 제시되어 있다. 『스승이며 주(主)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요한 13,14~15). 우리는 이렇게 사셨고 이렇게 살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며, 오늘은 그분을 『우리를 참으로 다스리시는 분』곧 『왕』으로 기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는 반드시 위에 인용된 예수님의 말씀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 왕」이라는 표현은 큰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라고 두 번이나(36절)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어떤 배경에서 나온 말씀인지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 그 말씀은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빌라도 앞에서 초라한 「죄인」으로 서 계시며 심문받던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왔다』라는 말씀도 하신다. 예수님은 당신의 삶 전체로써 「사랑이신 하느님의 진리」를 증언하셨다. 비슷하게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리가 신앙 안에서 체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증언할 사명이 있다.
오늘 우리가 지내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그분을 진정 우리 인생의 「주님」으로 믿고 살고 있는가? 그분께서 참으로 『나를 다스리고, 세상과 우주를 다스리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라고 믿고 사는가?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살고 있는가? 나의 삶에는 어떤 태도가 지배적인가? 『힘으로 남을 지배하려는 태도』인가? 아니면 『사랑으로 남을 섬기려는 태고』인가? 정직하게 살아 결코 남을 억울하게 만들지 않으며, 겸손하면서도 요란하지 않고 조용조용하지만 구체적으로 남을 도우면서 살려는 모습은, 작아 보이지만 분명히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한 양식일 것이다. 다른 한편, 신앙적으로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신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권력으로」또는 「돈으로」힘없는 사람들을 마구 억압하는 사람들과 그 제도들을 비판하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오늘은 성서주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금년도 선서주간 담화문에서 장익 주교님이 말씀하시듯이 성서는 『우리 신앙인의 영적 양식』으로서 『마치 광야에서 심한 갈증에 시달리던 사람이 만나게 된 오아시스와도 같다』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을 담고 있는 성서 말씀에 맛들이고, 그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하겠다. 그럴때 싸늘해져만 가는 이 세상이 우리의 작은 불꽃들로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되지 않겠는가?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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