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리스도의 사랑은 구체적이다
주님께서는 인간을 구체적으로 사랑하셨다. 관념적으로 추상적으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언어의 유희에 불과하다. 주님은 인간의 영생의 길을 설파하시는 한편 굶주린 사람을 먹이시고 병든 사람을 치유하시고 무식한 사람을 가르치시고 마귀들린 사람을 풀어주시고 죄인의 죄를 용서하셨다.
우리가 타인에게 베풀어야 할 첫째 사랑은 그 사람을 영원한 우원에로 인도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웃에게 구원의 진리를 전하고 마땅히 실천할 도덕을 일깨워야 한다. 그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빌어주고 그의 신앙적 윤리적 오류를 시정해 주고 그에게 악한 표양을 주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애덕 실천의 제1호는 타인의 구원을 돕는 일이다.
구체적인 애덕 실천은 타인에게 영성적 선을 베풀 뿐만아니고 그의 육체적 현세적 필요를 외면하지 않는다. 물론 동정하는 마음이나 위로하는 말도 애덕의 일부이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행동과 물질로써 거들어 주어야 한다.
여기서 애덕의 행위를 열거할 필요는 없지만 애적의 범주에 속하는 몇가지 원칙만 예시해 보자.
애덕은 남을 경솔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마태 7,1). 우리는 자주 타인의 장점을 과소 평가하고 타인의 단점을 과대평가한다. 그래서 주님은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면서 제 눈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 7,3)고 하셨다. 건전한 비판력과 잘못된 비평 버릇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애덕은 타인을 용서한다. 우리가 잘못하는 일이 많으면서도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기대한다면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이 우리의 용서를 기대할 수 없겠는가. 주님의 기도문에서 『저희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저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마태 6,12)라고 우리는 매일 기도하고 있다.
애덕은 타인에게 우리를 적응시킨다. 하느님 성자께서는 사람이 되기까지 인간에게 적응하셨는데 우리의 알량한 자존심은 자신을 남에게 적응시키는데 매우 인색하다. 물론 우리는 하느님의 진리나 도덕에 반대되는 일에 있어서 남에게 적응할 수 없다. 그러나 죄와는 관계가 없는 타인의 성격이나 환경에 적응해 준다는 것은 윤리적인 큰 용기이다. 자존심을 이기는 용기가 없으면 타인에게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덕은 남의 짐을 나누어 진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마음의 짐, 건강의 짐, 의무와 책임의 짐, 가정의 짐, 사회의 짐, 국가의 짐 등으로 짓눌려 있을 때에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시오. 그래서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시오』(갈라 6,2)라고 하셨다. 또 다른 곳에서 『기뻐해 주고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 주시오』(로마 12,15)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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