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성 요한 보스코가 생존하여 활동하던 때 그를 방문했던 교황 비오 11세(1883년 젊은 신부였을 때 보스코를 방문했음)는 보스코의 모든 사도직에 깊이 배어있는 기도 분위기를 금방 포착할 수 있었음을 로마의 신학생들 앞에서 회상했다. 교황은 그를 가리켜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동시에 그의 정신은 하느님가 함께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증언했다. 실로 요한 보스코의 영성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 안에서 절박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젊은이들에게 구체적 사랑으로 투신하여 봉사한 사도직의 삶이었다.
1) 젊은이들 위한 교육 사도직의 성소에 대한 확신
가. 타고난 카리스마의 자각과 연마
요한 보스코는 어린 시절부터 타고난 지도력을 보였으며 착한 일을 하고싶은 열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르침의 카리스마를 받았음을 일찍부터 자각했다. 『다섯 살 때 나는 아이들을 모아 교리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한 생각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마치 그 일이 내가 세상에서 해야할 유일한 일인 양 여겨졌다』.
그는 소년시절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던 재담, 노래, 곡예, 재능 등 미래에 젊은이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카리스마를 드러냈으며 그것을 지혜롭게 활용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의 좋은 눈썰미와 손재주로 일찍부터 몸에 직힌 여러 종류의 노동기술은 뒷날 젊은이들의 교육에 유익한 교본이며 자산이 되었다.
나. 장래 사명 예시로 여긴 아홉살 때의 꿈
요한 보스코는 아홉 살 때 평생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그의 성소를 예시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는 교황 비오 9세의 명을 받아 쓴 자서전에서 그 꿈 이야기를 들려준다.
근처에서 그가 수많은 아이들과 놀고 있었는데 적지 않은 아이들이 마구 욕을 하고 있있다. 보스코는 그들 가운데 뛰어 들어 주먹질을 하며 고함을 쳐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애썼다. 그때 고상한 차림의 남자 한 분이 나타나 그르 부르며 주먹다짐으로 하지 말고 온유와 사랑으로 이들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곁에 있는 어머니에게 보스코를 안내했다. 그 귀부인은 보스코를 가까이 불러 다정히 손을 잡아주었다. 그때 갑자기 아이들이 모두 사라졌고 사나운 동물들이 나타났다. 그 부인이 말했다. 『자, 여기가 네 일터다. 앞으로 너는 겸손하고 강인하며 굳건한 사람이 되어라. 지금 이 순간 네가 보고있는 이 동물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너는 장차 보게 될 것이다』.그가 눈을 들어보니 사나운 짐승들이 어느새 순한 양으로 변해 그 남자와 부인을 환대하듯 주위를 뛰어다녔다. 보스코가 그 뜻을 물었을 때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요한 보스코는 그 꿈을 통해 성모님이 자신의 사명을 미리 알려주신 것으로 굳게 믿으며 더욱 성모님을 사랑하게 되었다. 후에 그는 성모님을 살레시오 사업의 창립자로 모셨고 언제나 가장 든든한 후원자로 여기며 도움을 청했다.
2) 교육 및 사목적 영성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제가 성성에 이르는 고유한 길은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사제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자세의 직무화 생활에 관한 교령, 13항)이며 사제는 『수행하는 직무 전체를 통하여 완덕 생활에 진보하는 것』(같은 교령 12항)이라고 가르친다.
요한 보스코는 젊은이들이 교육과 사목을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불려 성실히 응답하면서 젊은이들을 극진히 사랑하고 그들에게 몸바쳐 봉사함으로써 성인이 된 분이다. 그가 얼마나 젊은이들을 사랑했는지 그의 표현에서 엿볼 수 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해 공부하고 여러분을 위해 일하며 여러분을 위해 살고 여러분을 위해 나의 생명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요한 보스코는 자신의 교육사업과 선교를 위해서 뜻을 함께 하는 동료들을 찾아내고 또한 그 사업이 지속적인 것이 되도록 수도회를 창설하였다. 그는 성 프란치스코 드살(살레시오)을 그의 수도회의 모범으로 정하고 수도회의 이름을 성인의 이름에서 취하여 「살레시오회」라 하였다. 그가 살레시오 성인을 모범으로 정한 이유는 온유하고 친절한 성품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안에 싸여있는 신비를 꿰뚫는 심리학자적 능력과 모든 사람을 크나큰 사랑으로 감싸는 박애주의 정신을 갖추었다는 것이고 또한 사랑을 교육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삼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요한 보스코는 신심에 활동적 사랑을 결합시켰다. 그가 살던 당시 어려운 상황에서는 활동적 형태의 사랑이 곧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의 길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선교적 사랑을 실천하였으며 그것을 가르쳤다. 그가 가장 좋아하던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라는 문구에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라는 말을 덧붙이곤 했다. 『만일 내가 한 영혼을 구하는데 성공한다면 내 자신의 영혼을 구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구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는 것 - 이것이 바로 우리 수도회의 목적입니다』.
요한 보스코가 제시한 그의 수도회원들의 바람직한 모습은 이러하다. 그들은 세상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세속적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구분 지으며, 열심한 평신도들보다 더 많은 기도와 금식을 하지 않으면서도 공동체 안에서 청빈과 정결과 순명의 복음적 권고덕을 단순히 실천하고 하느님 대전에 자신을 봉헌한 이들에게 요구되는 「완덕」과 그들이 서약한 「사도직」의 요구를 조화시키려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요한 보스코에게 있어 사도적 사랑은 그 시대에 가장 급박하게 요청되던 가난하고 고외된 젊은이들에 대한 우선적 관심과 배려로 나타난다. 그의 우선적 방향은 젊은이들의 여러가지 결핍(경제적, 애정적, 영적)을 깊이 통찰하고 그 것을 극복하는데서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영혼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것이었다. 요한 보스코의 교육 사도직은 신학이나 신학적 방법론 이상이었으며 그것은 바로 그의 「영성」이었다. 그것은 그의 생활의 영성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3) 노동의 영성
요한 보스코는 일에서 존엄성을 보았다. 그에게 일은 인간을 게으름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사회의 능동적 구성원이 되도록 해줄 뿐 아니라 구원적 사랑을 실천하는 방편이었다. 그는 일생동안, 노년에 이르러서도 부지런히 일하면서 근면의 모범을 보여 주었고 젊은이들과 수도회원들에게 부지런히 일하도록 가르쳤다. 『열정과 열의를 가지고 일하라고 말하십시오』.그리고 그는 말년에 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삶의 막바지에 와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일을 하고 젊은이들을 구원할 차례입니다』.
그는 살레시오회원들이 기쁘고 청빈하며 검소하길 원했으며 무엇보다 근면하길 원했다. 그는 또한 오라토리오의 젊은이들에게 수덕의 애덕적이고 생산적인 측면을 더 강조하였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들다, 나는 너희에게 고행이나 단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직 일하라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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