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미사만 참례하는 신앙생활, 그마저도 세속과 타협한 냉담생활을 이어오다가 각종 교육과 세미나 등을 거치며 속죄하고 회두하여 내 안에 주님을 모시고 봉사직을 맞기까지는 영세 후 14~15년의 세월이 지난 후였으며, 2000년 대희년에 연령회장 봉사 때의 이야기를 서두로 시작하겠습니다.
입관예절 염습 전에는 소독과 위생복 착용 등 위생과 감염관리를 철저히 하지만 분비물 등에 의한 촉각과 후각 고통은 감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 저에게 아리마태아의 요셉과 니고데모의 역할을 하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바치고 염습을 시작하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아 밝은 표정으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비어있고 열려있는 마음에 대하여 무언의 봉사로 복음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체험과 은총은 지금까지도 저의 신앙생활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2010년 하느님께서는 대림시기를 앞둔 위령성월에 쌍둥이 자매를 둔 31살의 며느리(로사)를 하늘로 데려가셨습니다. 갑자기 닥친 현실 앞에, 신앙에 대한 갈등과 하느님께 대한 원망 외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장례기간 부모, 형제같이 돌보아 주신 많은 분들, 수용인원의 배가 넘게 장례식장을 찾아온 추모객, 성당을 가득 채운 교우들의 애도와 성가대 추모곡에 태워 주님 곁으로 보낸 미국 산호세 순교자성당 장례미사, 도미(渡美) 전 활동하던 동료, 선·후배 교우들이 진행시킨 이문동성당 장례미사. 이 모든 것은 6년여의 낯선 미국생활을 포함한, 이 땅에서 보낸 아주 짧은 인생여정이지만 주님 안에서 사랑으로 잘 살았었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노래 잘하는 로사를 너무 사랑하셨고, 고운 소리를 널리 퍼지게 하기 위하여 노래연습 중에 하늘로 데려가셨지만, 고희를 앞둔 우리에게는 사랑의 결실인 예쁜 쌍둥이 손녀들을 남겨 주시는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며 행하신 것에 반하여 겸손도, 사랑도, 순명도, 섬김도, 종의 역할도 제대로 못하는 저에게, 당신의 뜻과 사랑을 로사를 통하여 깨닫게 해 주시어, 세속의 갈등과 절망, 하느님에 대한 원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바른길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주님, 감사 합니다. 사랑합니다.
- 강헌(그레고리오·동탄부활본당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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