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증인 신자 가운데 70%가 과거 가톨릭 신자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이유에 대해 성경지식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의 구절이나 숫자 등을 달달 외운다고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 정확한 입장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여 인류의 미래를 생각해야지, 구절을 뜯어 맞추어서 비밀을 푸는 책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해석할 필요 없이 남들이 그렇게 한다고 금과옥조처럼 따르는 태도는 현대인의 일상적인 삶에서도 나타납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가릴 것 없이 모두 몇 년 정도 선행학습을 하는 것이 당연한 풍조로 퍼져 있습니다. 안 하자니 불안하고, 모두가 그렇게 하니 믿고 따라하는 것이겠지요. 자녀들의 성향이나 학업 성취도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세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성경 등 경전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야 합니다. 영적 성장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찾아내려는 해석의 태도로 경전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종교마다 각기 다른 경전을 가지고 있고, 경전을 대하는 태도도 다양합니다. 초대교회 역시 복음을 받아들인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지만, 바오로 사도의 전도 이후 보편적 구원의 가르침으로 승화되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의 행적을 정리한 신약성경이 출현하였습니다. 물론 유대교의 히브리 성경도 받아들였지요. 다양한 신학적 논쟁들을 거치면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가르침을 담은 경전, 즉 정경(正經)이 확정되었습니다.
교회는 성경에 담긴 하느님의 말씀이 해석을 필요로 하는 언어로 보았으며, 교황과 교부들의 저술이나 공의회 문헌들을 통한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해석의 실마리가 되기도 하고 권위 있는 해석의 주체가 되기도 하는 이것을 교회는 성전(聖傳)이라고 부릅니다.
흔히 불교 경전을 팔만대장경이라고 말합니다. 팔만사천 가지 법문을 모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오랜 역사속에서 다양한 경전들이 인도와 티벳, 중국 등지에서 생겨났던 것입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진짜 부처님 말씀만 남기고 나머지는 없애버리자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경전의 난이도와 중심 교리에 따라서 경전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하고 해석합니다.
경전을 해석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문자로 기록된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안식일 규정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토요일에 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프로테스탄트 교파도 있지요. 이뿐만 아니라 이웃 종교인 이슬람에서도 쿠란의 구절을 그대로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들은 우상타파를 명분으로 인류의 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폭파시켜 세상 사람들의 공분을 샀던 적도 있답니다.
한국 가톨릭교회가 조선 후기에 크게 박해받았던 역사는 다들 아실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당시 유학의 풍조가 경전에 대한 해석을 허용하지 않고 지나치게 교조적인 방향으로 흘러 서학을 통해서 유입된 새로운 해석을 이단시하였던 데서 박해의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결국 경전에 대한 문자적 해석이 문제였던 것이지요.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성경을 등한시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뿐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는 성경 독서법도 있지만, 전례력에 맞추어서 해당 시기에 적합한 성경구절들을 읽고 묵상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수도자들은 성경의 자구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하느님께서 계시한 내용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독서법을 제시합니다. 말하자면 신심생활과 묵상, 기도 등 총체적 관점에서 성경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그래도 성경을 잘 모른다고 질타하면서 성경에 숨어 있는 비밀을 풀어주겠다는 분이 찾아오면 목청을 높여 입씨름을 벌이지 말고 상냥하게 대하십시오. 시원한 물 한 잔을 내드리면서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어머, 그래요? 하느님도 퍼즐 맞추기를 무척 좋아하시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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