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필리핀 가톨릭 신자들이 알고 있었던 전례의 유일한 형태는 트리엔트 전례서의 규정에 따라 거행되는 전통적 가톨릭 경신례 뿐이었다. 전례를 토착화하려는 시도는 거의 또는 전혀 없었지만 언제나 민족 문화와 가까운 대중 신심은 공식 전례와 나란히 꽃을 피웠고 신앙에 활기를 주었다.
1909년 벨기에에서 시작된 전례 운동이 유럽 선교사들을 통해 서서리 상륙했고 50년대 후반에는 전례서와 독서가 몇몇 지방어로 번역됐다. 하지만 평신도의 전례 봉사 등은 공의회 이후에 이뤄졌다.
공의회 이후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신자들의 신앙 쇄신에 이바지 했다. 하나는 전례 개혁에 관한 정보의 확산이었고 둘째는 꾸르실료라는 강력한 가톨릭 운동이었다.
공의회 직푸에는 학교, 수도원, 신학교에서 미사를 실험적으로 드리는 일이 생겼다. 그러나 본당들은 발표된 규범을 충실히 따랐다. 1990년 주교회의는 「성찬례 지침」을 발표했다. 이 문헌에는 교황청에서 만든 미사 거행에 관한 공식 규범이 실려 있었다. 1999년 주교회의는 「교회 건축에 관한 전례적 지침」을 승인했으며 「로마 미사 전례서에 대한 필리핀 교회의 보완」이 발표됐다.
공의회 개혁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의 하나는 평신도의 전례 참여이다.
전례 토착화를 위한 노력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는 몸짓들, 교회를 장식하는 상징들은 모두 문화의 구성 요소이다. 문제는 그것들이 우리와는 다른 문화 또는 문화들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고대 로마 문화와 중세 유럽 문화에 속한다. 토착화에 관한 교황청 문헌들은 우리 자신의 문화 양식에 어울리게 기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필리핀 가톨릭교회는 로마식 경신례를 필리핀 사람들의 문화 안에 토착화하고자 두가지 중요한 시도를 했다. 하나는 「필리핀 사람들의 미사」라는 것인데 이는 아직 교황청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둘째는 「혼인 예식」으로 이는 교황청도 찬성했다.
「필리핀 사람들의 미사」를 위한 작업은 1973년 필리핀 메어리힐 신학교에서 시작됐다. 1976년 주교회의는 교황청에 제출해 동의를 얻고록 승인했다. 여기서는 미사에 대해 몇 가지 기준이 제시됐다. 즉 ▲기도는 십자가 희생과 성만찬으로서의 미사에 관한 교의 표현 ▲진정한 필리핀의 가치들에서 나온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사회정의와 발전, 평신도 지도자의 활동 등 필리핀 교회의 관심사를 포함한다 등이다.
미사는 진정한 필리핀의 가치를 표현하는 단어와 말시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이사를 필리핀 사람들의 일상 경험으로 만들려는 목적으로 필리핀의 수많은 문화적 특성을 미사 거행 안에 통합했다. 이러한 토착화 작업을 통해 로마 가톨릭 교회가 미사가 언젠가는 「필리핀 사람들의 미사」가 되고 우리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필리핀의 문화 유산에 충실한 백성으로 하느님을 흠숭하게 되기를 바란다.
교황청은 1983년 타갈로그어를 말하는 신자들을 위하여 토착화 혼인 예식서를 승인했다. 이 혼인 예식은 「필리핀 사람들의 미사」가 모습을 갖추던 것과 똑같은 과정을 밟았다. 많은 필리핀 문화 양식들이 혼인 예식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이 토착화 예식서를 만든 사람들의 바람은 혼인과 혼인 생활에 관한 필리핀, 그리스도교적 가치들을 부각시키고 부부가 함께 하는 생애 동안 이 가치들을 마음에 새기며 사는 것이다.
신심 행위는 종종 필리핀 가톨릭 신앙의 기초로 간주된다. 교회의 공식 전례가 민족 문화와는 동떨어져 있을 때 그들의 대중 신심이었다.
필리핀 가톨릭교회는 새로운 천년기에 들어서면서 신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토착화의 시급성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 신중하게 시도된 전례의 토착화는 필리핀 사람들의 확신, 곧 자신들은 가톨릭 신자이며 필리핀 사람이라는 것, 자신들이 선교사들에게 받은 신앙에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의 옷을 입혀야 한다는 것, 자신들의 언어와 상징들을 사용해 하느님을 흠숭하면서도 여전히 보편교회와 완전한 친교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더욱 깊게 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토착화는 로마 가톨리교회의 가르침을 훼손하지 않으며 오히려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소속감을 더욱 깊게 한다. 우리 고유의 전통과 관행을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로마 가톨릭 신자로 남아있을 수 있는가. 그러나 토착화에 관한 진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다음 사실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필리핀의 토양에 뿌리를 내려야 하며 우리의 문화와 전통에 육화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토착화는 우리에게 로마 가톨릭 교회를 바로 우리 자신의 교회라고 주장하도록 허락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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