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법상, 동기인 김대건 신부님보다 생일이 5개월 20일 더 빠른 최양업 신부님이 사제서품 서열이 더 높아야 했다. 그럼에도 최양업 신부님이 두 번째로 사제가 되신 것은 하느님의 깊은 섭리가 숨겨져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김대건 신부님을 순교를 통한 피의 증거자로, 최양업 신부님을 땀의 증거자로 쓰시길 원하셨다. 최 신부님께서 한국에 입국했을 당시 한국교회는 폐허가 돼있었다. 1839년 기해년 대박해와 1846년 병오년 대박해로 한국교회 평신도 지도자들은 모두 잡혀 순교했었다. 이런 혼란의 시기에 중국 땅에서 준비시키셨다가 한국의 구원사업을 위해 부르신 분이 바로 최양업 신부님이셨다.
최양업 신부님은 길의 사도요 땀의 증거자였다. 최 신부님은 목자 없는 양처럼 헤매는 양떼를 찾아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생을 마친 땀의 순교자였다. 최 신부님은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이민족의 구원을 위해 한국 땅을 제단 삼아 자신의 한 생애를 오롯이 봉헌했다.
최 신부님은 양떼를 지극히 사랑한 착한 목자시기도 했다. 신자들의 고통을 보고 한없이 가슴이 미어졌던 사제셨다. 이러한 사랑은 박해시대 고통 받는 신자들을 위로하고 감동을 줬으며 나아가 신자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해줬을 것이다.
최 신부님 선종 5년 뒤인 1866년 병인년 대박해 때 8000명이 순교하게 된다. 순교는 신앙의 꽃이다. 순교는 깊은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최 신부님은 신자들의 마음속에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믿음을 심어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회사가 순교자 중심으로 엮어졌기 때문에 김대건 신부님의 그늘에 가려져 1970년대까지 최 신부님을 제대로 아는 신자가 거의 없었다. 이후 최양업 신부님의 첫 본당이자 사목중심지인 진천 배티성지를 중심으로 30년 간 현양운동 전개와 시복시성준비를 해 2005년 12월 3일 역사적인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을 위한 한국교회의 법정이 개정됐다.
2009년 6월 3일에는 교황청 시성성에 시복서류를 제출했다. 현재 하느님의 종 최양업 신부님은 증거자로 시복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시복시성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기적심사가 남아 있다. 하느님의 종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해 많이 기도해 주길 바란다. 주변에 현대 의학으로 어쩔 수 없는 중병을 앓는 신자가 있을 것이다. 이런 분들에게 최 신부님을 알려주시길 당부한다.
2021년 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주년에 최 신부님이 시복시성되실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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