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만에 새 교구장을 맞이하는 광주대교구의 표정은 설레임과 기대가 교차하고 있었다.
착좌일을 이틀 앞둔 지난달 28일 오후 5시. 교구청 집무실에서 만난 최창무 대주교는 예의 그 환한 미소로 방문객을 맞았다. 40여분에 걸쳔 지역 언론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자리.
『중복되는 질문도 있을 것 같아 송구스럽다』는 말에 『반추해보는 자리로 생각하자』며 웃어넘기는 말에서 최대주교의 꼼꼼함과 배려가 묻어난다.
『작년 4월 부임하신 후 1년 6개월여가 지났습니다. 그간 광주에 계시면서 느끼신 점이 있다면』
조금은 의례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 최대주교의 답변이 거침없이 이어진다.
『광주는 예전에 특강을 하기 위해 대건신학교를 몇차례 방문한 적이 있어 낯설지는 않아요. 지리적으로 아직 생소한 면이 없지 않지만. 산들이 완만하고 유(柔)한 멋을 지니고 있어 포근함을 느낍니다. 주민들도 친절하고 대부분 친인척으로 연결되어 있어 가족적인 분위기예요. 또 호남은 곡창지대이기도 하고, 아직 농경문화의 정취가 남아있어 초등학교 시절을 전형적 교우촌인 시골에서 자란 저로서는 오히려 대도시 보다 더 포근학 친근함을 느껴요 』
마치 아련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라도 하듯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빛고을」사람이 되어 가는 최대주교의 순수함을 보게 된다.
광주대교구장으로서 향후 사목방향에 대해 그는 「운영의 묘(妙)」를 강조한다. 『급작스런 변화는 원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 보완은 필요하겠지만 의견을 수렴하고, 일치되고 합의된 사항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최대주교는 특히 지역별 특성을 충분히 감안한 「지역 특성화 사목」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밝힌다. 최대주교의 「특성화 사목」은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만큼 현장을 중시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제가 오랫동안 여러 사회사목 분야에 관여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질문이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봉사하는 것이 참 모습이지 특정 분야에만 국한될 수는 없다고 봐요. 따라서 오늘, 이곳에서 더 필요하고 덜 필요한 것,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들을 가려내서 하나씩 추진해 나갈 생각입니다』
그가 말하는 지역 특성화 사목은 지난 18개월간 96개에 이르는 교구내 본당을 하나도 빠짐없이 방문해본 뒤 내린 결론.
『광주를 비롯한 대도시와 시골 지역은 주민들의 생활은 물론이고 문화적 반응도 다 달라요. 여수 순천 등 여타 도시들도 또 나름의 특성을 띠고 있고요.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살리고 현장의 소리를 제대로 듣자는 것이 특성화 사목이 의도입니다』
금년초 함평본당 관내 5개 공소를 분리해서 「공소사목특구」로 지정하고 3명의 사제가 공동 사목토록 한 것이 이러한 특성화 사목의 대표적인 사례.
최대주교는 이와 관련 『농촌의 공통점은 젊은이가 없다는 것이고 자연 기존의 사목형태로는 농촌사목을 제대로 이뤄낼 수가 없다』면서 『수도회와 교구, 평신도 등 3자(者)가 참여하는 시골살리기운동을 펴야 한다』고 제안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지역사회 속에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신뢰회복이죠. 노동사목, 빈민사목, 한마음한몸운동, 정의평화활동 등 교회의 대사회 활동은 무수히 많습니다만 저는 신뢰회복운동이야말로 시급하면서도 교회가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해요. 「단결해야 산다」고들 하지요. 하지만 단결할 수 있는 것도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죠. 소비자운동이든, 생산자운동이든 서로가 믿고 약한 이들 편에 서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최대주교의 말에 따르면 도농간 교류, 농촌살리기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가 가능하다.
『아시다시피 신협운동이 교회에서 태동했어요. 도농교류가 말처럼 쉽지 않다지만 이것도 실은 상호간 신뢰문제가 아닐까요. 교회 안에서 도시 사목자와 농촌 사목자들이 같은 사제로서 신뢰못할 이유가 어디있습니까. 또 도시와 농촌 신자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결연을 맺고 교류를 활성화해 간다면 사회적 파장은 엄청날 겁니다』
개인적인 질문으로 주제를 돌렸다.
최대주교는 94년 3월 주교서품 당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를 사목표어로 정했다. 작년 3월 광주대교구 부교구장 임명때는 「말씀은 생명의 빛」을 표어로 선택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는 강생 구속의 신비를 담았어요. 하느님 말씀이 육화를 통해 지극한 사랑을 드러내 보이신 것은 근본적으로 영원한 삶에의 초대를 일깨워준 사건입니다.
「말씀은 생명의 빛」이란 표어는 사실 「빛고을」과 「5·18 민주항쟁」을 염두에 뒀어요. 말씀은 기쁜 소식이고 인류의 희망이죠. 이 말씀의 빛이 온 빛고을을 비출 때 광주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을 겁니다. 이 말씀의 빛, 생명의 빛이 이웃에 퍼져나갈 때 바로 사회복음화도 성취되겠지요』
최대주교는 특히 올해 20주년을 맞은 「5·18」과 관련, 『교회도 사회도 20년전과 똑같은 모습일 수는 없다』면서 『교회도 현대가 요청하는 교회의 모습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역사속에서 「민주항쟁」으로 자리매김한 「5·18」을 영성적으로 재해석하고 그 의미를 영성화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최대주교는 또 교회가 신자만을 위한 폐쇄적인 공동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하고 지역 사회와 더불어 사는 삶, 개방적 삶을 지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목자 역시 지역민들과 함께 사는 것이고, 그들의 필요에 협력하는 것이 참 사목자의 모습이라는 말과 함께.
광주대교구의 현안에 대해선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로 비유를 든다.
『자원은 많은데 계획성과 조직에 의한 움직임이 미흡하다고 느꼈어요. 교회는 어떠한 일을 제안하게 되면 이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따라서 이에 필요한 기구나 조직적인 측면에서 시스템을 강화하고 활성화하는데 주안점을 둘 생각입니다』
『겅강유지요?. 뭐 특별한 비법 같은 것은 없어요. 운동은 구기종목은 다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할 수는 없고 20년전부터 산책을 거의 매일 하고 있어요. 요즘엔 매일 아침 2~30분간 단전호흡을 하는데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매일 묵주기도를 5단 이상은 꼭 바치고, 읽을수록 새로운 맛이 새록 새록 솟아 난다는 성서를 가장 감명깊게 읽고 있다는 최창무 대주교.
교구민들과 후배 사제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청했다.
『제가 여기올 때 「주님의 뜻 안에서 순명하려합니다. 여러분들도 주님의 뜻으로 받아주십시오」하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한 신비체로서 서로 보듬고 격려해주고 도와주면서 주님의 뜻대로 헌신적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교구 사제단에게 덧붙였다.
『「여러분과 함께」그리고 「우리는 하나」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교회의 모습은, 특히 사제단의 모습은 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주교는 그 원의 한 점에 비길 수 있어요. 이 점은, 즉 주교는 아무런 영역이 없지만 원은 바로 이 점에 있음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인터뷰 동안 몇번이나 『무엇이든 열심히 배우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강조하는 최창무 대주교. 새 천년기와 더불어 시작되는 그의 교구장 시대가 초겨울의 파란 하늘만큼이나 맑아보인다.
■ 최창무 대주교 약력
36.9.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 갈곡리 출생
55.2. 성신고등학교 졸업
60.3. 가톨릭대 신학, 본과 3년 수료
62.7. 독일 프라이브르크대학교 졸업
63.6. 사제수품
66.12. 천주교 명동교회 보좌
69.7. 독일 프라이브르크대 대학원 신학박사 학위 취득
70.1.~94.2. 가톨릭대학교 교수
72.1. 가톨릭대학 대학원 교학감
73.9. 가톨릭대 신학부장 겸 교무처장
77.9. 서울대교구 관구 신학원장
79.9. 가톨릭대학 제11대 학장
89.2. 가톨릭대 부설 사목연구소 소장
91.9. 가톨릭대학 제16대 학장
92.5.~94.2. 가톨릭대학 초대 총장
94.3.~99.3.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
95.3~99.3.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99.4. 광주대교구 부교구장 대주교
00.11. 광주대교구장 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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