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아이구…, 어쩌다 그때 너를 보냈는지…』.
리용호(69·사진)씨의 맏형 이인호(베드로·79·천안 원성동본당) 할아버지. 이 할아버지의 탄식에는 50년 세우러에도 사그라지지 않은 짙은 회한이 묻어 났다. 그렇게 가슴에 지울 수 없던 그림자로 남아있던 열아홉살 앳되기만 하던 동생은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어 형제들의 품으로 잠시나마 돌아왔다.
6·25때 먼저 결혼한 형들과 어린 동생들을 대신해 6남1녀의 대표로 용호씨가 의용군으로 나서는 바람에 생이별을 해야했던 그의 가족들은 평생을 그리움에 몸부림치며 살았다. 리씨가 꿈속에서나마 그렸던 남녘의 가족들도 그 그리움 만큼이나 불어난 조카와 손자를 포함해 98명. 그러나 리씨를 그토록 애타게 찾던 어머니 홍금임(데레사)씨는 기다림에 지쳐 올 3월 아흔 아홉의 나이로 하느님 곁으로 가고 말았다. 어머니가 언젠가 돌아올 셋째아들을 위해 유품으로 남기고 간 옷가지를 둘째형 봉호(사바·70)씨로부터 건네 받은 리씨는 어머니의 남은 체취라도 확인하려는 듯 옷에 얼굴을 묻고 한없을 것 같은 울음을 울었다.
반세기 끊어졌던 동기간의 정을 다시 이으려는 남녘 가족들의 눈물겨운 노력, 그러나 2박3일로는 채울 수 없어 아쉬움을 더했다. 여동생 선호(62)씨는 미리 준비해온 줄자로 즉석에서 오빠의 팔, 다리, 허리 치수를 재 이튿날 양복을 마련해왔다. 상봉 둘째날 남쪽의 형제들은 음력 12월 14일로 칠순을 맞는 리씨를 위해 「때이른」칠순생일상을 차렸다.
『생일 때마다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미역국과 찰밥이 그리워 북에서도 생일상이 달갑지가 않았어』.
케이크와 샴페인, 와인 등으로 차려진 생일상을 바라보며 리씨는 손수건으로 계속 눈가를 눌러댔다.
『내년 내 팔순 때 또 와야 한다』아우의 등을 감싸안는 인호씨는 기약없는 헤어짐에 가슴부터 메어져 왔다. 짧은 만남, 형과 아우의 가슴속에는 반세기 한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헤어지지 말고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면회소가 만들어지면 자주 만나자꾸나』.
형제의 가는 길, 공항까지 따라나온 남쪽 가족들은 돌아설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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