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이론 가운데 조건 형성이란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은 지렛대를 밟으면 문이 열리고 먹이를 먹을 수 있게 장치를 한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으면 처음에는 고양이가 지렛대를 잘 누르지 않지만 우연히 지렛대를 밟았을 때, 문이 열리고 먹이가 제공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 점차 지렛대를 누르는 횟수가 짧아지게 되고 필요에 따라 지렛대를 누르게 된다는 것으로 학습자가 환경을 조작한다는 의미에서 조작적 조건 형성이라 한다.
이와 같이 인간의 행동도 그 행동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따를 때 그 행동이 강화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교육현장이나 치료현장에서 이 이론을 원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은 보상에는 칭찬이나 격려 인정 등의 긍정적 강화물과 처벌이나 회피와 같은 부정적 강화물이 주어질 수 있는데 교육적 측면에서는 긍정적 강화물이 더 효과적이고, 부정적 강화물은 거의 효과가 없다고 한다는 점이다.
오늘 복음은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이야기이다. 성모님이 왜 엘리사벳을 방문하게 되었을까? 단언 할 수는 없지만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방문하게 된 동기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 흔들리는 신앙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추론할 수 있는 이유는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자 마리아는 내가 처녀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때 천사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증거로써 보여준 것이 바로 친척 엘리사벳의 수태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성모님은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란 신앙의 가장 위대한 응답을 하게 된다. 그러나 성모님은 위대한 신앙인 이기에 앞서 연약한 인간이었기에 의심과 불안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 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과연 내가 잘한 일일까? 그리고 천사의 말, 처녀가 아이를 낳고, 내가 구세주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약혼자 요셉이 믿어줄 것인가? 등등을 반문하면서 여러 가지 상념에 잠겼을 것이다. 아마도 이때 성모님의 머리를 떠나지 않은 천사의 말은 바로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를 보면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라는 천사의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성모님이 나자렛에서 유다 산골의 한동네, 에인카림이라고 알려진 곳, 오늘날 버스로도 세 시간이나 걸리는 머나먼 거리를 가련한 여인의 몸으로 혼자 힘겹게 여행하게 된 것도 여행의 어려움보다는 천사의 말을 확인하고픈 강렬한 욕망과 흔들리는 신앙에 대한 증거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성모님은 이 엘리사벳 방문 사건을 통해 한 단계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란 성모님의 신앙에 대한 엘리사벳의 찬사의 말씀이었다. 이 말씀을 듣고 마리아는 자신의 순명이 옳았음을,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진정 복된 일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온전히 순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늘 복음에 이어 유명한 감사시, 마리아의 노래가 나오는데 이 노래를 부르게 된 계기도 엘리사벳의 이 말씀 때문이라고 증언(루가 1, 46)하고 있는 점만 보더라도 엘리사벳의 이 말씀이 성모님께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성모님의 흔들리는 신앙, 증거를 찾고자 하는 신앙을 보면서 부족하고 나약한 또 다른 우리의 모습에 대한 위로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에 찬양을 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누리가 같이 묵상해 보고 싶은 점은 「마리아의 신앙에 대해 아낌없는 지지와 격려」를 보내준 엘리사벳 성녀의 모습이다.
구세주의 탄생과정의 중심점은 성모님임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 첫 출발점에서 성모님과 함께 엘리사벳의 오늘의 모습도 분명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에거 가정이란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아무런 격려와 위로를 받지 못했다면 성모님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은 단 한사람만이라도 자신의 행동을 이해해지고 격려해 줄 때만이 자신의 일에 대한 의미와 확신을 가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결론은 분명해진다. 우리가 비록 성모님처럼 위대한 신앙의 응답을 할 수 없다면, 우리 주위에서 하느님의 뜻을 위해 또 다른 모습의 성모님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진정한 칭찬이나 격려를 아끼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한 삶도 엘리사벳의 삶처럼 구원의 역사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와 평화, 공동체와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 우리 삶의 현장에 예수님의 탄생을 현실화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온마음을 다해 격려와 박수를 보내면서 성탄 전야를 맞이하자!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