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다른 개개인이 숲처럼 어우러져 작은 마을을 이룬다’라는 의미를 지닌 ‘다림촌’은 중국,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다양한 국가 출신의 다문화가정 결혼이주여성들이 고향의 대표음식들을 선보이며 꿈을 키워가는 그들만의 일터다. 지난 5월 4일, 원주교구장 김지석 주교 주례 축복식(개소식)과 함께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탁탁, 보글보글, 쓱싹쓱싹.”
매일 아침, 주방에서는 하루에 쓸 식재료를 다듬고, 홀에서는 바닥을 쓸고 닦으며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다. 점심시간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하기 때문. 개점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손길이 더욱 바빠진다.
▲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다림촌 식구들.
▲ 다림촌 축복식(개소식) 때 열린 다문화가족과 함께하는 ‘한식요리 경연대회’.
▨ 어서 오세요.
시계가 낮 12시를 알리기가 무섭게 손님들이 몰려든다. 총괄반장 오설매(중국) 씨를 필두로 주방장에 르으읍 푸엉(베트남) 씨, 주방보조에 당티타이엔(베트남)·로스길랑(필리핀), 서빙에 찌라난(태국) 씨가 손님을 맞는다. 이들 모두 ‘다림촌’의 어엿한 주인이다.
매년 농촌지역 결혼이민자의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의 적응과 생활을 도와 줄 기관이나 시설 등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지만 공장, 식당 보조 등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도 한계가 있다. ‘다림촌’은 바로 이 점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탄생했다. 이들이 단순히 도움을 받는 것만이 아닌 스스로 주인이 돼 자체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다림촌’의 설립 목적이다.
횡성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센터장 배은하 신부는 “사회복지는 우리 주위에 함께 살고 있는 이들 중 가장 나약하고 어려운 이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를 하는 것”이라며 “그들이 주인이 되고, 자기 스스로 일해서 보수를 받아 떳떳하게 살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것이 복지이며, ‘다림촌’ 역시 이러한 취지로 설립됐다”고 밝혔다.
‘다림촌’에서는 횡성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회계와 기본관리만을 도와주고, 5명의 결혼이주여성들이 식재료 구입, 조리, 서빙, 계산, 설거지, 청소, 수입 배분 등 식당 운영 전반을 맡고 있다. 언어의 장벽과 문화 차이로 교육과 습득에 일반 한국 사람들보다 배의 시간이 걸리지만 시간이 갈수록 일도 능숙해지고, 자신감도 붙었다.
한국으로 시집온 지 14년이 됐다는 총괄반장 오설매 씨는 “이렇게 나와 돈을 벌 수 있어 좋고, 내 것, 내 가게라고 생각하는 만큼 애착이 남다르다”며 “문화 차이나 의사소통 등 어려운 점도 있지만, 이곳에서 일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심감이 점점 자라났다”고 말했다.
▨ 맛있게 드세요
‘다림촌’의 메뉴는 보편적인 입맛을 따른다. 각국의 음식 중 가장 자신감 있고 즐겁게 만들 수 있는 보편적인 서민 음식들을 골라 메뉴로 선정했다.
베트남의 소고기 쌀국수 ‘포’, 월남쌈 ‘고이꾸온’, 태국의 파인애플 볶음밥 ‘카오팟 사파로드’, 새우 볶음밥 ‘카오팟 꿍’, 볶음면 ‘팟타이’, 일본의 ‘버섯 샤브샤브’, ‘메밀국수 소바’, 캄보디아의 춘권 ‘롱티오’, 중국의 ‘어향육사’ 등이 그것.
고향의 음식을 직접 만들기에 ‘다림촌’ 음식의 인기는 대단하다. 맛도 맛이거니와 지역 사회 내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각국의 다양한 음식들이 손님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권해영(스콜라스티카·원주교구 구곡본당) 씨는 “회사가 근처에 있어 점심시간에 ‘다림촌’을 자주 찾는다”며 “생소한 음식이지만 우리 입맛에도 맞고, 양도 많아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다”고 전했다.
색다른 입맛에 도전하길 꺼려하는 이들을 위한 칼국수와 만둣국, 비빔밥 등 한국 전통 요리도 빼놓을 수 없는 인기 메뉴다. 한국 전통 요리는 횡성군종합사회복지관 내 실버사업과 연계,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르신들의 깊은 손맛이 배어 있다. 어르신들을 통해 가까이서 한국 입맛을 배울 수 있는 것도 이들에게는 큰 장점이다.
▲ 다림촌 식구들 단체사진.
‘다림촌’은 지난해 9월부터 시범영업을 시작했다. 거창한 홍보 대신 가장 먼저 한 일은 지속적인 메뉴 개발이었다. 사전에 비슷한 메뉴를 판매하는 음식점을 방문해 먹어보고, 스스로 만들고 비교해가며 메뉴를 구성했다. 식당을 방문한 손님들을 대상으로 시식행사도 펼쳤다. ‘다림촌’이 위치한 횡성은 어르신들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어르신들의 입맛에 맞추는 데도 신중을 기했다. 이처럼 메뉴 하나에도 ‘다림촌’ 식구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지금도 ‘다림촌’에서는 메뉴 개발을 멈추지 않는다. 매주 금요일마다 돌아가며 각 나라의 새로운 음식들을 소개하고, 시식 행사를 통해 메뉴로 올릴지 여부를 결정한다. 최근에는 날씨가 더워지면서 시원하고 담백한 ‘콩국수’가 새 메뉴로 선정됐다.
횡성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 최제인 팀장은 “현지인들이 음식을 만들다 보니 여느 다른 곳에서 팔지 않는 색다른 메뉴도 시도해볼 수 있다”며 “계속해서 메뉴를 개발하는 것은 손님들에게 좀 더 다양한 음식을 제공하고자 하는 ‘다림촌’ 식구들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이 ‘다림촌’이 손님들에게 인기를 끄는 비법 양념이기도 하다.
좀 더 신선하고 깨끗한 재료를 대기 위해 건물 바로 옆에 손수 텃밭을 가꾸는 것도 손님들을 위한 ‘다림촌’ 식구들의 약속이다.
또 ‘다림촌’은 다문화가정에 대한 인식 개선에도 한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각국의 문화를 알리는 것은 물론,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 문화 소통의 장이 되고 있는 것. 서투른 한국어로 소통하면서도 ‘다름’을 받아들이고, 또 배워나가는 모습이 지역 사회에도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울러 식당 문을 닫는 일요일이면 ‘다림촌’은 사랑방으로 변신, 국적별 자조모임을 열고 고향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친목을 다지는 공간으로도 쓰인다.
이처럼 ‘다림촌’은 계속해서 다문화가정 결혼이주여성들이 올바로 설 수 있고, 지역 사회가 다문화가정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소통의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앞으로 건물 외부 공간에 각국의 차와 간식을 맛볼 수 있는 ‘다문화 카페’도 조성할 예정이다. 최 팀장은 “‘다림촌’은 결혼이주여성에게 일자리와 주인의식, 자신감을 심어주며, 지역 사회가 다른 나라의 음식과 언어를 직접 체험하면서 ‘다문화가정’을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다림촌 033-343-0087
▲ 다림촌 전경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