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경.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에 자리한 수정마을에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주민들과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은 택지조성을 위한 매립지에서 들려오는 일상적인 공사소리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11월 5일 한 마을 주민으로부터 이 굉음이 공사 소음이 아닌 조선업의 블록제조 작업에서 나는 소리라는 제보를 받게 되고, 평화로웠던 수정마을에 길고 긴 수난의 시간이 시작된다.
STX의 조선기자재공장 건립은 두 가지 측면에서 커다란 심각성이 있었다. 첫째, 조선소 건립에 대한 주민들의 사전 동의도 없이 창고로 활용한다고 속였다는 점. 둘째, 환경오염에 대한 대비책 없이 세수 확대와 고용창출이라는 경제적 측면만을 강조해 강행했다는 측면이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마산시는 수정마을에 택지조성을 목적으로 1994년 11월부터 수정만 매립공사를 시작했고 이후 시공사의 사업 중단으로 시공권이 STX 중공업으로 넘어간 것이 발단이 됐다.
마산시는 조선공장 유치를 위해 STX에 법적·제도적 지원을 약속하는 약정서를 체결했고, 주민들 몰래 주거용지가 아닌 산업용지로의 용도변경을 추진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분개했지만 힘이 없었고 결국 트라피스트 수녀원에 도움을 요청했다.
트라피스트 수녀원은 “금역을 지키며 숨은 삶을 살아온 수녀원이 이 문제에 어떻게 함께하며 실질적으로 힘이 되어줄 수 있을지, 그것이 과연 얼마만큼 가능할지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는 상황이었다”면서 “하지만 복음적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회피할 수 없는 요청이었다”고 설명한다.
이후 수녀원은 로마 본원에 상황을 알리고 허가를 얻어 대외적인 활동에 참여했다.
사업단지 승인과 사업 철회를 탄원하는 소송, 이 사업의 부당성을 환경전문가들의 근거를 통해 밝혀내고 언론 보도, 행정기관 항의 방문 등 조선소 유치 반대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상황이 전개될수록 조선소 건립 저지 가능성은 희박해져갔다. 행정기관과 기업이 결탁돼 있는데 지역민의 힘으로 이를 막기란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팽배했다.
본지 2009년 6월 21일자(제2653호)에 게재된 기사에서 당시 원장 장혜경 수녀는 “처음부터 이 투쟁은 집 잃은 가난한 이들의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며 “하지만 삶의 터전과 고향을 잃는 주민들과 함께하는 것이 복음적 가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고 말한다.
트라피스트 수녀원과 주민대책위는 사회문제 관련 사제단,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환경운동연합회, 시민사회단체, 환경전문가, 여러 수도회와 신자들의 지원을 받으며 무수한 항의 집회와 1인 시위, 전문가 토론회, 행정 당국과의 면담, 감사 청구, 법정소송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결국 STX의 산업단지 승인이 ‘이주를 희망하는 368세대 전원에 대한 보상과 수녀원 이전’을 포함한 주민지원 계획 26개 조항을 조건부로 이뤄지게 된다. 또 2010년 매립 사업이 완료되고 소유권이 시에서 STX로 넘어가 사업 실시를 위한 행정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조선소 건립을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된 수녀원과 주민들은 마지막 희망으로 이주 대책 마련과 보상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한다. 또 창원, 마산, 진해 3개 시가 통합되며 민원의 해결을 위한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STX는 산업단지 승인 때 포함됐던 조건에 발목이 붙잡히고 만다. 올해 3월 이주희망 세대조사 결과 230세대가 이주를 희망해 왔고, STX는 이주보상의 책임을 회피하며 “지속적인 반대 민원이 있는 수정지구의 사업 추진이 곤란하다”는 답변과 함께 사업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분쟁의 불씨가 모두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매립지의 소유가 여전히 STX로 돼 있으며 이는 향후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 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또 조선기자재공장 건립을 두고 찬성과 반대로 갈라져 반목해온 주민들의 화합 역시 커다란 숙제다.
6월 25일 트라피스트 수녀원에서 봉헌된 감사미사에서 마산교구 총대리 이형수 몬시뇰은 “경제적 이득이라는 명목으로 약한이들을 억누르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라며 “트라피스트 수녀원과 주민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더 이상의 상처 없이 아픈 마음이 치유되길 기도드린다”고 말했다.
■ 수정마을 STX 사태 경과
1990. 7. 18
마산시 공유수면 택지조성 목적 매립면허 승인(경상남도고시 제1990-215호)
2006. 5. 8
매립 시공권 STX 중공업에서 인수, 마산시와 STX 중공업 간에 약정서 체결
2007. 7. 31
마산시 → 경상남도에 매립사업목적변경인가 신청(택지조성에서 조선소 유치를 위한 공업지역으로 변경)
2007. 8. 27
해양수산부의 부동의에 따라 경상남도가 마산시에 매립사업목적변경인가 신청 반려
2007. 11. 5
트라피스트 수녀원과 수정마을대책위, 법제처·해양부·경상남도·국민고충처리위원회·건교부에 탄원서 제출
2007. 11. 9
낙동강유역환경청 현장실사를 통한 위법행위로 판단, 수사계획 발표
2008. 3. 3
마산시, 목적변경 행정절차 강행 입장 밝힘
2008. 3. 7
시민사회단체 간담회와 마산시청 정문 촛불시국미사
2008. 4. 29
수정지구 매립목적변경 승인 처분 무효, 집행 정지 신청을 창원지방법원에 접수
2008. 5. 30
수정마을 대책위의 상경집회 때 마산시, STX 유치 주민 찬반투표 졸속 강행
2008. 6. 10
마산교구 사제단, 정의평화위원회 기자회견
2008. 12. 12
수정일반산업단지 환경교통영향평가 전문가 검토 국회토론회
2009. 3. 18
마산교구청 대강당에서 ‘수정만- STX 유치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
2009. 4. 23
낙동강유역환경청, 수정일반산업단지계획승인 환경영향평가 조건부 협의
2009. 6. 3
마산교구청 대강당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종교인(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성직자)’ 기자회견
2009. 6. 5
수정 주민과 트라피스트 수녀원, 마산교구청에서 무기한 농성 시작
2009. 6. 8
수정만일반산업단지 경상남도지방산업단지계획심의위원회 심의결과 통보
2009. 9. 3
STX 중공업 수정만 주민이주보상, 어업보상 마산시에 떠넘김
2009. 11. 13
수정지구 공유수면매립준공 조건부 인가(인가번호 : 제2009 - 3호)
2010. 2. 17
수정지구 공유수면매립사업 준공정산 협약 동의안 반대 합동 집회
2010. 3. 26
마산시-STX 중공업, 수정지구 공유수면매립사업 준공정산 협약 체결
2010. 6. 21
통합창원시 인사 관련 대책위 의견서 박완수 시장당선자에게 전달
2010. 7. 6
통합창원시청에서 수정만매립지 STX 조선기자재공장건설 관련 주민-시민대책위 합동 기자회견
2010. 7. 20
박완수 시장과 시민사회대책위 - 주민대책위 대표들 면담
2011. 1. 6
수정만 이해당사자 대표들 첫 모임
2011. 5. 16
창원시, STX 중공업(주) 수정산단 포기입장 표명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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