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언급한 가톨릭 영성 네 가지 중, ‘근본적 영성’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이는 말 그대로 가장 근본이 되는, 변하지 않는 영성이다. 근본적 영성은 영성생활의 출발이고 마침이다. 아브라함과 모세, 예언자 등을 통해 하느님께서 구약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보여주신 근본이 되는 영성, 이것이 바로 근본적 영성이다.
이런 근본적 영성에는 무엇이 있을까. 믿음, 희망, 사랑, 청빈, 정결, 순명, 은총, 기도 등을 들 수 있다.
이 근본적 영성의 종결자는?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구약을 완성하신 분이다. 따라서 구약을 통해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근본적 영성의 완성은 예수님에 의해 이뤄진다.
예수님은 실제로 근본적 영성을 철저히 실천하는 삶을 사셨다. 늘 아버지와 합치되어 있었고,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속에서 사셨다. 늘 아버지께 기도드리고, 은총 안에서 공생활을 하셨다. 이것이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본받고 걸어가야 할 근본적 영성이다.
우리는 더 나아가 이러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갖고(신덕),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희망으로(망덕), 그리스도와 세상을 사랑(애덕)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희망은 나의 희망이 아니라, 하느님의 희망이다. 또 사랑도 내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해야 한다. 영성생활에서는 나의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중요하다. 그래서 늘 깨어 있어야 하고, 항상 분별해야 한다. 내가 북한 동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북한 동포에 대한 애덕을 나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신 것이다.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총은 이미 충분히 나에게 와 있다. 내가 이웃을 사랑해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은총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미 나에게 은총을 내리셨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끊임없이 정진(기도)하는 것이 바로 근본적 영성이다.
여기에 좀 더 덧붙이자면, 근본적 영성에는 ‘청빈’ ‘정결’ ‘순명’도 함께 포함된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우리는 진정한 청빈과 정결, 순명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러한 삶은 선택된 몇 명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풀어야 할 숙제다. 그래서 근본적 영성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근본적 영성(믿음, 희망, 사랑, 청빈, 정결, 순명, 기도, 은총)을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휴식, 침묵, 명상, 성실함이 필요하다.
인간은 언어적 동물이다. 말을 할 줄 아는 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진정한 인간이라면 말을 해야 할 때,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 영적으로 창조된 인간은 침묵할 때 진정한 영적 성장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심통 난 곰처럼 입 튀어나온 모습으로 입 다물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의 침묵은 고요함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는 내적 침묵이다. 침묵을 실천하는 이의 얼굴에선 빛이 난다. 침묵을 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휴식을 취해야 한다. 눈을 쉬어야 하고, 입을 쉬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휴식은 반드시 산 속으로 들어가는, 낚시터에 가는 그런 휴식이 아니다. 노래방에 가서 스트레스 푸는 그런 자기중심적 휴식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는 지하철에서도, 시장에서도, 러시아워 도로 위에서도 휴식과 침묵을 지킬 수 있다. 영성생활의 전제조건이 바로 이 휴식과 침묵이다.
이러한 휴식과 침묵 속에서 성실하게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근본적 영성이다. 이것이 영성생활의 기본 중에서 기본이다. 근본적 영성에 대한 성취 혹은 갈망 없이 영성생활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최근 ‘보통 남자’와 사랑하고 싶다는 내용의 가사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 여가수의 노래가 있다. 이미 결혼한 40대 50대 주부라면 다 안다. 그게 쉬운 일인가. 영성생활의 기본 중의 기본, 근본적 영성을 실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본, 보통, 평균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본은 지키지 않고 자꾸 다른 것을 넘본다. 그게 문제다.
근본적 영성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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