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공동체, 발안 엠마우스
이주민 사목센터 발안 엠마우스(전담 제리 말라탐반 신부)는 특별하다. 필리핀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이곳을 필리핀인 신부가 직접 사목하다보니 이곳은 이미 하나의 작은 필리핀 마을이 됐다.
천주교가 국교인 필리핀인 만큼 그들의 전통행사는 곧 전례력과도 일치를 이룬다. ‘노비나’라고 부르는 크리스마스 직전 9일기도는 이제 이곳 필리핀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밤을 지새우는 정기적 행사가 돼버렸고, 그렇다보니 발안 엠마우스는 그들이 잠을 자고 갈 정도로 친숙한 하나의 보금자리로 거듭났다.
미사, 세례성사 등 다양한 성사활동은 물론 찬송연습과 세미나, 상담 등 발안 엠마우스는 다양한 기능을 가졌다.
이곳을 찾는 필리핀 노동자는 늘어나는데, 장소가 좁아 얼마 전에는 옆 건물의 한 장소를 더 임대해 다목적실로 사용하고 있다.
전담 제리 신부(마리아의 아들 수도회)는 “이곳에서는 필리핀인이 아니면 이해하지 못할 다양한 개인적인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성 간 교제 문제, 서로 갚지 않은 돈 문제, 미사에 참석하지 않는 문제, 도박 문제 등 다양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성 간의 문제는 심각하다. 얼마 전에도 필리핀에 아내가 있는 남성을 사귀고 있는 한 필리핀 여성이 발안 엠마우스를 다녀갔다. 비도덕적인 부분임을 지적해주고 상담과 충고를 해주었지만 그는 들어주는 것 외에 더 이상 해결책을 원하지는 않았다.
필리핀 노동자의 시선으로
필리핀 노동자들의 상황과 성격, 바람 등을 가장 잘 이해하는 필리핀인 신부가 절실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제리 신부는 엠마우스를 찾는 필리핀 노동자들에게 가장 필리핀적인 시각으로 다가서며 상담한다.
장거리라는 이유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이곳을 찾지 못하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북적거리는 것도 이곳 발안 엠마우스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엠마우스는 거의 축제의 장을 방불케 한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비교적 한가한 제리 신부는 엠마우스 인근 텃밭에 채소 모종을 심었다. 한국 채소부터 필리핀에서 가져온 채소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필리핀에서 가져온 채소는 많이 죽었지만, 그래도 제리 신부의 정성으로 꿋꿋하게 자라나고 있는 것들도 있다.
제리 신부는 “필리핀 채소들을 키우니 필리핀 노동자들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잘 자라면 음식을 만들어 모두 나누어 먹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발안성당에서 매주일 오후 3시 열리는 미사 또한 제리 신부를 즐겁게 한다. 평균 필리핀 신자 100여 명이 참례하며, 행사가 있거나 많이 참석할 때는 400명 가까이 참석하기도 한다.
또 수원지역이 너무 멀어 미사를 봉헌하지 못하는 베트남, 스리랑카, 아프리카 등 다른 지역 신자들도 발안성당의 필리핀 미사를 찾아 기도하고 간다고 했다.
제리 신부는 “멀리 떨어진 공장지역에서 일하는 이들이 많아 교통이 불편한 것 외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며 “이렇게 함께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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