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9월 이 마티아 여구 신부의 제의로 이 여구 신부와 금사리본당 청년들 그리고 필자는 함께 낙화암을 찾았다.
의자왕 20년 3월에 나당(신라와 당나라)연합군이 백제의 수도 부여를 함락했을 때, 방탕했던 마지막 왕께 충성을 맹세하고 이 낙화암에서 꽃다운 생명들을 아낌없이 내던진 3천 궁녀들. 한 포기 풀과 같이 시들어간 호화로왔던 백제의 왕국과 함께, 하염없는 꽃송이같이 저 한 많은 백마강 푸른 물에 몸을 날린 그때 그 궁녀들이 내 마음을 처연하게 했다. 저 낙화암을 바라보면서 옛일을 물어도 푸른 강물 속에 충절을 지켜간 3천 궁녀들은 대답이 없고 흰 물결만 굽이쳐 마음을 갈긴다.
이 신부는 『구약성서의 전도서의 저자가 산전수전 다 겪고 만년에는 가슴을 치며「헛되고 헛되도다. 세상만사 다 헛되도다. 천주님을 알고 그를 공경하는 것 외에 만사가 다 헛되다」고 탄식한 그 금언이 생각나오』하시며 『꽃 같은 궁녀 3천명이 저 낙화암에서 떨어져 가며 절개를 지킨 것이 오늘의 우리 성직자들에게 주는 교훈이 아니겠소?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끝이 서는구려!』하셨다.
1930년 당시 여러가지 사건이 사제상에 흑칠을 한 일이 있었기에 이 마티아 신부는 낙화암에서 망국(亡國)에 충절을 다한 그 궁녀들처럼 스스로를 죽이며 그리스도의 상을 지켰는가고 자책하시며 내일의 사제가 될 나에게 진정한 사제상을 그려보자 하셨다
이 신부=『오 부제! (이 신부는 부제가 되려면 까마득한 나에게 이렇게 부르셨다) 참다운 사제가 되려면 비안네 신부같이 되어야지!』
필자=『그럼요! 그분은 언제나 자기를 「땡땡이」라고 자칭하셨지요. 그리고 「나는 아주 바보스런 물건이다」라고 겸허해 하셨지 않아요!』
이 신부=『광야에서, 동굴 속에서 일생을 극기하며 보속과 희생을 드리던 은수자(숨어서 수도하는 사람)들을 본받으시려고 풀을 뜯어 잡수시기도 했었지!』
필자=『그뿐이겠습니까? 우리 비안네신부는 방문을 잠그고 죄인들 회개를 위하여 자기 몸을 사정없이 때렸답니다. 채찍가죽 끝에는 쇠고리ㆍ가시들을 옹쳐매 가지고 ……불쌍한 비안네 신부였지요. 아니 거룩한 사제였지요! 그때마다 천주님은 얼마나 많은 은혜를 주셨는지 모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그분은 내게 주셨습니다」하셨지요? 신부님』
이 신부=『나도 비안네 신부를 본받기로 줄곧 다짐해왔지만 채찍질은 못해본걸』
필자=『그 채찍은 세 번씩이나 퇴학당했어도 아들같이 사랑해 주시던 바례이 신부가 유산으로 준거래요』
이 신부: 『그것뿐이겠수! 비안네는 자기 몸 덩이를 항상「늙은 아담」「냄새 나는 시체」라고 했지뭐유!』
필자: 『신부님, 그것 아세요? 비안네 신부는 아무리 견고한 채찍이라도 14일동안을 견디지 못하고 망그러지면 몰래 또 다른 것을 대 든든히 만들어 쓰셨다니 이 신부님! 저는 좌절감을 느낍니다. 이를 어쩌지요?』
이 신부: 『자기본당의 2백30명 냉담자회개를 위해 자기하나를 희생하신 거지! 우리도 그 정신을 본받아요. 오부제도 후일 사목생활 때 이 점을 잊어버리면 뼈 없는 송장밖에 안돼요』
필자: 『신부님 명심하겠습니다. 또 비안네 신부는 이기주의자들에게「내 형제들! 예수님께서 우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셨지 춤추는 자들이 행복하다고 아니하셨어요! 명심해서 생활태도를 고치시오!」하셨지요?』
이 신부: 『그리스도께 순명하여 공덕을 쌓는 대신 마귀와 놀아나는 사람들을 보니 울화통이 터져서였지요.』
필자: 『또 한번은 본당교우들이 하도 말을 안 들으니까 큰 소리로 따졌더랍니다. 그러니까 뭐 싼 놈이 성낸다고 그들이 대들었대요. 왜 그리 고함을 지르느냐?』고. 그때 비안네 신부는 빙그레 웃으시며「아냐1 난 지금 비둘기들 보고 그랬지! 뭐!」하시며 딴청을 부리기도 하셨더랍니다.』
이 신부: 『저 백마강 구비구비 흐르는 물결에 비치는 석양을 좀 보시요! 얼마나 아름다워요! 천주님께서 아름답게 만드신 영혼들을, 제 스스로 춤으로 주정으로 음탕한 죄로 탐욕으로 교만으로 배금주의로 짓이겨 버리는 2백30명 아니 전세계 그런 부류의 영혼들을 비안네 신부가 볼 때 화가 나지 왜 안나겠어요! 나는 이미 이 길에 들어섰고 오부제는 머지않아 사목생활에 돌입하게 될 터이니 오늘 이 낙화암에서 백마강을 바라보며 굳건히 맹세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제상을 굳건히 다짐하여 나갑시다.』
이미 황혼은 대지를 붉게 물들이고 백마강 나루터 배들은 나그네를 건너게 하려고 바삐 움직인다. 뱃사공의 노래는 망국의 옛 궁터에 서글프게 울려 퍼져갔다. 『배 저어라. 해가 진다. 나그네 갈길 바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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