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순 기섭의 가슴속에서 야릇한 충격이 일었다. 놀라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한 순간 애기씨가 어떻게 나오는가 보고 싶어, 짐짓 거역해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자 그는 곧 그런 마음을 떨구었다. 그에게는 이미 야릇한 기대 같은 것이 가슴에서 두근두근 돌고 있었다.
『오, 알었이유』
기섭은 떨리는 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럼, 내 앞에 앉어. 무릎 꿇구……』하고 애기씨가 부드러우면서도 찰진 소리로 말하였다.
기섭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애기씨는 공책을 펴서 연필과 함께 기섭의 무릎 앞에 놓아 주었다. 그리고 애기씨는 책을 폈다. 국민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였다.
『글자 하나하나를 똑 바로 보면서, 날 따라서 읽어. 우선 읽기부터 헐테니께.』
그리고 애기씨는 회초리 끝으로 글자를 하나하나 짚으면서 또박또박 읽기 시작하였다.
『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어요』
기섭은 조금 멋쩍기도 해서 떨리는 소리로, 그러나 차근차근히 따라 읽었다.
애기씨는 한결 기분이 좋아지는 빛이었다. 낭랑한 소리로 먼저 읽기를 계속하였다.
『어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기섭은 한결 차분해진 소리로 또 따라 읽었다.
『방금 이게 무슨 자라구 했지?』
갑자기 애기씨가 글자 하나를 짚으며 물었다.
기섭은 얼른 떠오르지 않았지만 방금 읽었던 말을 입 속으로 뇌어 보며 글자들을 헤아려 본 끝에, 히……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애기씨는 손으로 글자들을 가리고 한 글자만을 보여 주며, 『이거 무슨 자지?』하고 물었다.
기섭은 알 수가 없었다. 금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니께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여. 눈에다 불을 켜구. 이 번은 처음이니께 용서를 해주지만, 다음부터는 손바닥을 때릴 티어.』하며 애기씨는 한결 엄한 표정을 지었다.
애기씨는 정말 선생님 같은 모습이었다. 근엄하고 신비스럽기조차 한 모습이었다.
기섭은 허튼소리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그러며 그는 자주 마른침을 삼켰다. 가슴속에서 계속 뜨겁게 끓어대는 것이 있었다.
행복감과도 같은 마냥 설레이며 꿈틀대는 감정이었다.
그날 기섭은 모음과 자음들을 배우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익히고, 자신의 이름자와 선생님의 이름자도 배워 익혔다.
그리고 그날은 해가 큰 소나무의 가지에 걸릴 무렵에 공부를 마치고 산을 내려왔다.
기섭은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설레이며 벅차며 끓어오르는 감정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신도 글을 배우고 글을 알게 된다는 것이 어린 마음에도 꿈만 같았다. 그리고 애기씨에게 글을 배운다는 것이 더욱이 꿈만 같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글을 배우며 애기씨와 단둘이 자주 함께 있을 것을 생각하니 몸이 둥실떠서 훨훨 날아가는 것만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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