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녀로 순교한 김누시아는 한강 근처에 살던 양반 집안에서 1818년(순조18년)에 태어났다.
어떤 기록에는 반을집 딸이었다고도 한다. 본래 집안이 교우였던 관계로 일찍부터 교리를 배워 익혔으며, 14세 때에 이르러 이미 동정을 지킬 마음을 간절히 갖게 되었다. 그의 세속 이름이 나타나 있지 않음 이유도 어려서부터 루치아라는 본명으로만 불리어졌던 까닭일 것이다. 천성이 양선(良善)하였고 용기가 있었으며, 용모도 아름다웠다고 한다.
외교인이었던 부친이 돌아가신 후 루치아는 모친과 언니와 함께 수계를 타당히 하였다. 그러나 그녀에게 성교를 일깨워 주신 모친마저 돌아가시자 그녀는 얼마 안되는 가산을 팔아 장례를 치르고 교우의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그 집이 바로 이매임 데레사의 집이었다.
여기서 루치아는 동정할 결심을 더욱 굳히게 되었고, 신공을 독실히 하였으며 함께 생활하던 여러 교우들과 더불어 자수하여 신앙을 증거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기해년 4월 11일 자수하여 포청으로 압송된 여교우들은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게되었다. 이 중에서도 루치아는 남달리 천진한 태로와 한결같은 마음으로 포장의 주의를 끌었다.
특히 포장과의 문답에서 성교의 교리를 설명하고 자기의 결심을 나타낸 바를 보면 그녀가 얼마나 진실한 교인이었으며, 순교의 열망이 얼마나 간절하였는가를 알 수가 있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포장은 그녀에게 배교를 강요하면서 위협을 하였다. 그러나 루치아는 『저희들이 믿는 천주는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는 분이시니, 모든 피조물의 큰 임금이시며 아버지이신 이 주님을 배반하겠읍니까. 만번을 죽어도 그렇게 할 수는 없읍니다.』라고 하여 단호히 배교를 거부하였다.
포장은 다시 처주를 믿게된 경위와 동정을 지킨 이유, 영혼과 천주의 실체 등 성교의 기본적인 도리에 대하여 질문을 하였다.
이에 대한 루치아의 대답은 너무나 타당하였던 것으로, 그녀는 『아홉살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천주교를 배웠읍니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기를 엄금하기 때문에 저와 같이 천주교를 믿는 사람을 하나도 댈 수 없읍니다. 그리고 이제 겨우 20세 밖에 안되었으니 시집을 가지 않은 것이 이상할 것은 없읍니다. 그뿐 아니라 처녀의 몸으로 혼인 문제에 대하여 대답한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니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말아 주십시오. 영혼은 육체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신령한 실체입니다. 저도 죽기는 무섭습니다. 그러나 제가 살려면 천주를 배반하라고 하시니,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죽기를 원하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하여, 자신은 오직 천주를 배반하지 않기 위하여 죽음을 택하는 것이라 하였다.
또 『영혼은 육체 안에 있읍니다. 시골에 사는 백성들이 임금님을 뵈옵지 않았다해서 임금님이 계신 것을 믿지 않읍니까.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보고 저는 그것들을 창조하신 대황과 높으신 아버지를 믿는 것입니다.』라고 하여 성교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었다.
포장은 루치아를 달래기도 하고 꾸짖기도 하였으나 그 뜻을 굽힐 수 없었으므로 주최와 주장을 가한 다음 옥에 가두고 말았다. 옥에 갇혀서도 그녀는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안색이 흔연(欣然)하여 포졸들은 그녀가 귀신이 들렸다고 생각하게 까지 되었다한다.
형조로 옮겨진 후 형관의 문초와 형벌이 더하여 졌지만 그녀는 굴하지 아니하였다. 오히려 『저희들의 종교는 하도 아름답고 참된 것이어서 상감과 대신들이 연구하려 하신다면 기꺼이 믿게 될 것입니다』라 하여 성교의 도리를 밝히었으니, 형관도 그녀의 말이 옳다고 인정할 정도였다.
이렇긋 아무리 하여도 그녀의 용기는 꺾이지 아니하였으며, 이에 형관은 다른 교우들과 함께 루치아에게 사형을 선고하기에 이르렀다.
사형선고를 받은 뒤에도 그녀는 여러 주일동안 옥중의 간고와 굶주림을 겪어야 하였다. 족중에서 루치아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잘라판 돈으로 먹을것을 구하여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또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어 주님의 부르심이 하루바삐 오기를 기도하며 친구를 주님의 길로 인도하려고도 노력하였다.
이러한 그녀에게 마침내 영광의 날이 닥쳐왔으니, 기해년 7월 20일 루치아는 다른 교우들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던 것이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2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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