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7월 20일에 순교한 교우들 중 마지막으로 희생된 사람은 동정녀 원귀임 마리아였다. 그녀는 1818년(순조18년) 고양군(高陽郡) 용머리(龍頭里)에서 태어나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고아가 되었다. 아홉 살 때에 서울에 사는 고모인 열심한 교우 원 루치아가 그녀를 맡아 길렀는데, 루치아는 그녀에게 교리문답과 경문을 가르쳐 주는 한편, 수놓는 법을 일러주어 그것으로써 생계를 잇도록 하였다.
마리아는 보성이 충직하고 겸손하였으며 진실되고 선량하여 그녀의 열성과 견실함이 고모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또한 언제나 나이보다 젊잖은 모범을 보여주어 주위사람들이 모두 열복(悅服)하였다고 한다.
이때에 그녀는 이미 수절할 원의를 마음에 품고 있었으며 항상 심신을 화평하게 갖고 열심히 수계하였다 열다섯살이 되어 영세를 받은 후 곧 혼인의 말이 났으나 이를 거저하고, 이듬해에 머리를 올려 시집간 여자 모양으로 쪽을 찌고 다님으로써 동정을 지켜나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시작되고 2월에는 그녀에게도 박해의 손길이 뻗치게 되었다. 어느 날 밤중에 포졸들이 그녀의 집에 들이닥쳤을 때 처음에는 이를 피하여 도망할 수 있었지만 길에서 그녀를 알던 마을 사람들에게 들켜 붙잡히게 되었다.
마리아는 한참동안 몹시 당황하여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으나, 이 세상에서 천주의 뜻이 아닌 일은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의 평온을 되찾아 심신을 진정하고 겁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종사관(從事官)에게 대략 문초를 다한 후 마리아는 홍사(紅絲)로 결박되어 포장 앞으로 끌려갔다. 포장은 그녀에게 천주교인임을 확인하고는 배교하라고 강요하였다
이에 마리아는 『저는 분명히 천주교인으로서 천주를 공경하고 제 영혼을 구하고자 합니다. 제 결심은 단단하여 죽어야만 한다면 죽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 영혼을 구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배교하면 영혼을 잃게 됩니다』라고 답변하였다. 화가 난 포장이 주리를 틀고 주장을 가하며 형벌을 혹독히 하였으나 그녀는 굴하지 아니하였으며, 전신이 늘어지고 피가 흘렀는데도 오히려 정신은 맑아 답변이 한결같았다
그 후 형조로 옮겨져서 도마리아의 마음은 변하지 아니하였다. 형관이 아무리 친절히 대하고 얼르면서 약속을 하여도 그녀의 마음에 감명 줄 수는 없었으며, 혹독 고문은 오히려 그녀를 꿋꿋하게 만들었다.
문초 당할때마다 거의 매번 고문을 받았지만 그녀는 침착을 잃지 않고 언제나 의젓하게 결심을 표명하였다. 옥중에서는 허기와 목마름으로 몹시 괴로움을 당해야만 하였고 염병까지 걸려 고생을 더하였다. 마리아는 이렇게5개월 동안을 옥에 갇혀 있다가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기에 이르렀다.
당시 마리아등 여덟명의 교우들에 대한 사형선고와 집행에 대하여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귀중한 기록이 있는바, 이는 다음과 같다. 즉 『서울 옥에 갇혀있는 사학죄인(邪學罪人) 이광렬 등은 사학에 깊이 빠져 모두 그 죄를 고백하였나이다.
그런데 명(明)나라 법률에 의하면 마술을 행하고 주문을 쓰며 민중을 속이기 위하여 그것을 퍼뜨리는 자는 참수를 당할 것이라 하였나이다. 또 그 법에 의하건대 열 가지 큰 죄 중에 하나를 범하였다고 승복하여 사형선고를 받은 자는 지체 없이 사형을 진행하게 되어 있나이다.
그러므로 의정부(議政府)에 상계(上啓)하는바는 이광렬 등에 대하여 즉시 형을 집행해야 하는지 문의하는 것입니다』라고 형조에서 주청하였으며 이에 대한 재가(裁可)는 『형조 사학죄인 이광령 김장금 김누시아 이영희 이매임 원귀임 김성임 김도서 참수에 처하도록 하라』는 영으로 내려졌던 것이다.
영은 당일, 즉시 1839년 7월 20일에 시행되어 원 마리아 등의 교우들은 서소문밖에 끌려 나가 참수를 당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괴로움이었던 것으로 그들은 이것을 문초때에 받던 형벌과 마찬가지로 인내하여 용감히 받아냈었다.
이 순교의 영광을 받았을 때 마리아의 나이는 22세였으며, 이에 비로소 천주의 어린 양과 경건한 혼인계약(婚姻契約)을 피로써 맺는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