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세상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어찌하여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죄짓도록 창조했는가?』
이 질문은 가장 지혜로운 질문 같지만 실상가장 어리석은 질문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소치에서 나온 질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자체가 판단할 수 있는 지능을 가졌고 그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자유의지가 부여된 고등동물이다.
그러므로 죄를 짓지 못하는 인간은 선행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 소위 인간이 자율적인 행위를 할 수 없다면 동물과 하등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다른 동물은 지능이 없고 또한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에 선행도 죄도 범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죄짓는 인간의부조리」를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당신은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고 개로 태어났으면 좋겠읍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모두가 부정적인 답변을 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그런 질문이 나올 수 없다. 흔히 우리는 범죄로 인해서 불행해지는 부정적인 면만을 보고 일반적인 표현을 한다.
예컨대 보험료를 타기 위해 남편을 독살하는 무서운 죄만을 보고 전율을 한다. 그러나 한편 기차 건널목에서 죽을 위험이 있는 아이를 살리고 자신은 죽는 너무나도 귀한 선행의 측면을 본다면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이런 경우 『어찌하여 인간이 이처럼 귀한 선행을 하도록 창조되었는가』하는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요컨대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기에 선행도 할 수 있고 또한 죄도 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엄성은 자신이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데 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 한해서만 행복이 있고 동시에 불행이 있다.
문제는 행복한 인간이 되느냐, 불행한 인간이 되느냐 하는 두 길목에서 선택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데 인간의 가치가있다.
시퍼런 칼을 손에 들고 그것으로 나무를 빚어 탁자를 만들어 인간에게 봉사하느냐, 아니면 그 칼로 남의 배를 찔러 살인죄를 범하느냐 하는 두 갈래 길에서 선택의 자유가 부여되어 있고 그 자유행사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유일한 존재가 이 우주에서 인간 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되었다」
그 자체로서 동물이나 한 포기 식물보다 위대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지능에 의한 자유의지의 선용에 따라 참된 인간의 길을 찾아 스스로가 성숙시켜 나갈 때 진정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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