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 교우들 중에는 일가친척이 함께 성교의 진리를 증거하기위하여 순교의 길을 택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 때문에 순교자 개개인의 행적을 기록한다는 일과 함께 그들의 인척관계를 살펴본다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어느 순교자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미비하다고 할지라도 그의 일가친척이 비길데 없이 꿋꿋한 순교자였다면 그들이 함께 생활하였던 이상 서로의 모범을 보고 강화를 받았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점을 항상 중히 여기고 명기(明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해년 9월 3일에 순교한 사람들도 모두 교우 집안으로 적어도 그들 이외의 가까운 일가 친척 중 어느 누구가 천주교의 순교자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이들을 「殉敎一家」라고 부르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박 큰아기의 교명은 마리아로 1786년(정조10년)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기해년 5월 24일에 순교한 동정궁녀(童貞宮女) 박희순(朴喜順) 무치아가 그녀의 여동생이며、그녀는 이 동생과 함께 자라났다. 동생인 루치아가 궁중에서 빠져나온 후로 그들 자매는 완강한 외교인(外敎人)인 아버지를 피하여 조카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다가 기해년 4월 15일에 체포되었다.
마리아의 행적과 신임의 표현은 비록 나타나있지 않으나、끝까지 신앙을 견지하면서 치명한 것으로 보아 그녀도 동생 못지않게 성교의 도리를 행하고 증거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마리아는 당시 국법이 정하는 바에 의지 못하고 몇 달이 지난 9월 3일에야 순교하였으니、이때 그녀의 나이는 54세였다.
권희 바르바라는 당시 교회의 회장이었다가 기해년 5월 24일에 순교한 이광헌(李光獻) 요한의 형수이며、1840년 1월 9일에 순교한 동정녀 이아가타의 모친으로 대표적인「순교일가」(殉敎一家)의 가족이었다. 본래 외교인이었던 집안에서 1794년(정조18년)에 태어났으나、결혼 후 남편과 함께 입교하여 열성으로 봉교하였다. 남편을 도와서 목숨을 내걸고 앵베르(Imbert:范世享) 주교 및 신부들을 자신의 집에 모셔온 후、신자들을 모아 미사에 참여케 하고 강론을 들도록 하였으며 성사를 받을 수 있게 배려하였다. 생활이 곤궁하였던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주님의 뜻을 따라 교우들에게 항상 모범을 보여주었고、정성스럽도록 교우들을 보살펴 신앙의 길로 인도하였다.
그러던 중 기해박해가 일어나 교우들이 곳곳에서 체포당하였다. 마침내 4월 7일 저녁에는 바르바라도 포졸들의 습격을 받아 남편과 시어머니、그리고 8세 된 아들과 17세 된 딸과 함께 붙잡혀 포청으로 압송되었다. 당시 그의 집에서는 남몰래 예배를 보기 위하여 신자들이 모여있다가 돌아간 후인데、그중 한 예비신자의 외교인 남편이 밀고하여 포졸들의 습격을 받은 것이었다.
압송되어 수없는 형벌을 받는 중에 가장 바르바라를 괴롭힌 것은 그녀의 자녀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자녀들은 비록 보살펴 주는 이들이 없었을지라도 신앙의 힘으로 그 고통을 잘 참아 받았다. 포졸들이 아이들에게 그들의 부모가 배교(背敎)하여 석방되었다고 속여 보기도 하였으나、그들은 오히려『저희부모님이 배교하고 안하고는 그분들의 일입니다. 저희들은 항상 섬겨온 천주를 배반할 수 없읍니다』라고 변하지 않는 믿음을 나타낼 뿐이었다. 특히 17세 된 딸 아가타는 태장(笞杖) 300대 이상과 대곤(大棍) 90대를 맞았고、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렸으나 결코 배교하지 아니하였다. 포청에서 80세 된 시어머니와 8세 된 자녀는 신문을 하지 않고 석방하려 하였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가족과 함께 남아 있겠다고 말할 힘이 아직 남아 있었으며、관헌들은 그의 말을 들어 주었다. 며칠 후 그녀는 석방이 되었으나 형관은 그녀의 연세가 높은 것을 존중하여 배교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포청과 형조에서는 어린아이들을 이용하여 바르바라를 배교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온갖 육신의 고통과 정리(情理)를 천주께 바치고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빌 뿐이었다. 이렇게 고통의 나날을 보내며 4개월 넘어 지내는 동안 그녀는 끝까지 성교의 모든 도리를 지켰으며、마침내 9월 3일 서소문밖에서 참수되어 순교하니 이때 그녀의 나이는 46세였다.
금옥희
<수녀ㆍ한국순교복자회ㆍ수원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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