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느낌은 길래 기섭의 가슴을 괴롭혔다. 또다시 가슴이 울울창창해지고 그의 앞에 거대한 강물같은 것이 흐르면, 그때마다 그는 산마랑을 올랐다. 마을 어귀 고개마루 옆의 산날망은 그의 안식처나 다름없었다. 아니,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는 계속해서 자주 그만의 그 안식처를 찾았다. 그렇게 자주 찾다보니, 그 소리가 울리는 날을 알게 되었다. 매주 일요일이면 반나절 무렵에 그 소리가 울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매주 일요일마다 반나절 무렵에 맞추어 그 산날망의 안식처에 오르곤 하였다. 어느새 그것은 습관이 되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시간에 맞추어 산을 오르다 보니 일요일이, 그리고 그 소리가 매번 그를 꼭꼭 불러내는 것만 같았다. 그는 여못 그런 느낌이었다. 한번이라도 일요일에 산을 오르지 않으면 심히 아쉽고 서운한 것이었다. 마음이 몹시도 허전한 것이었다.
그는 방 안에 갇혀서 산송장처럼 살았던 서방님이 결국 세상을 떠난 날도 산을 올랐다. 그 날은 일요일이 아닌데도 그 소리가 울렸다. 그는 일요일이 아닌 날에도 그 소리다 울리는 날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다행스러운 감이 들었다. 병에서 한 번도 깨어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실성한 채로 죽은 서방님이 불쌍하여 눈물이 나왔고, 방 안에 갇혀 사는 그 서방님의 온갖 뒤치닥거리를 도맡느라 고생고생하였던 자신의 지난 날들이 떠올라 가슴이 저렸지만 그러나 마음이 평화로왔다. 맑고 차분하게 가라앉는 마음이었다.
공교롭게도 마님이 세상을 떠난 날도, 그날 역시 일요일이 아닌데도 그 소리가 울렸다. 그는 산날망의 그 안식처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러며 그는 마님이 가엾고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마님을 원망하거나 어쩌는 마음을 갖지 않았다. 마님한테서 매를맞고 호통이며 꾸지람이며 지청구를 다 듣고 온갖 구박과 천대를 받으며 살았던 지난날들이 환하게 떠올라 눈물이 쏟아졌지만, 웬지 마님을 원망하고 싶지 않았다. 아예 마님을 원망하거나 어쩌고픈 마음은 일절 없었다. 그 자신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마음이었다.
목소리가 가랑잎 구르는 소리 같은 어른머슴이 세상을 떠난 날을 일요일이었다. 그 날도 그는 산을 올랐다. 산날망의 그 안식처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자신의 나이도 모르는 채로 살다가 죽은 어른 머슴, 사타구니 속이 텅비어서 목소리가 가랑잎 구르는 소리 같았다는 그가 불쌍하여 몹시도 눈물이 솟았다. 그날은 흐릿한 아버지의 얼굴도 떠올랐다. 죽은 어른 머슴이 생전에 들려주었던 많은 얘기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한없는 슬픔이 복받처 올랐다. 그는 길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평화로 왔다. 그는 자신에게 들려오는 종소리가 새삼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다. 그 종소리를 들으면 자신의 마음이 왜 그토록 평온해지는지, 좀더 신비스러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그 종소리가 있음이 그지없이 다행스러웠다. 그 종소리를 떠나서는 살수 없을 것만 같은, 정말살수가 없으리라는 이상한 마음도 들었다.
그는 이미 그 종소리가 읍내의 천주교회에서 들려오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천주교회라는게 무엇인지, 무엇하는 곳인지 잘 알지 못했다. 천주님이라는 분을 맞는 사람들이 모이는 집이고 일요일이면 그 사람들을 불러모으느라고 종이 울린다는 것만을 들어 알뿐, 그 이상은 알지 못했다.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