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독자들로부터 『1811년 12월 9일자 교황께 올린 탄원서를 원본대로 소개해 달라』는 요구가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이번호 그 원문을 게재, 2백주년을 보다 더 뜻있게 교황님을 눈앞에 모시고 같은 명상에 잠겨 보라고 그 원문을 소개한다. 금상첨화로 「로마」의 시성추진 담당자 윤민구 신부님이 바티깐 고문서고(古文書庫)에서 두폭 비단에 쏜원본을 찾아 보냈기에 그것을 금년 2월 21일 입수하여 여기 직는다.
이글은 권일신의 아들인 권계인 요한이 이여진 요한과 함께 명주비단 두폭에 붓글씨로 깨알같이 적어 교황성하께 올린 편지글이다. 교황성하께 직접 올린 것은 북경주교에게 백방으로 탄원했으나 허사였기 때문이다.
이 편지가 교황께 직접 전달된 것은 권계인과 이여진이 교황께 전달하는 조건으로 북경의 누네스 리베이로주교 대리에게 이글을 올렸고, 그는 마카오의 요아킴 수사 드 사라이바 주교님께이 편지를 전했는데 그가 이편지를 포루투갈어로 번역해 포루투갈주재 교황대사에게 보냈었다.
교황대사가 즉시 이 편지를 「로마」로 보냈으나 당시 교황 삐오 7세는 나풀레옹 1세에게 납치당해 폰뗀뽈로 별궁에 감금돼 있던 불운한 운명의 몸이었다.
이 탄원서는 교황성하께서 한 많은 눈물로 읽고 또 읽으신 우리 선열들의 피맺힌 글이다.
신미년(1811년) 12월 9일자 우리 조선교우들이 교황께 올린 탄원서
프란치스꼬와 조선의 다른 교우들은 땅에 엎디어 가슴을 치며 지극히 높으시고 지극히 위대하신 온 성교회의 으뜸께 이 글월을 올리나이다.
지극히 간절하고 열절한 마음으로 성하께 간구하오니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성하의 마음에 가득찬 자비의 빙거(사실의 증명이 될 근거)를 보여 주시며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구속의 은혜를 내려주소서. 저희들은 조그마한 나라에 사는 자들로 처음에는 책으로 10년 후에는 강론과 7성사에 참례함으로써 거룩한 교리를 받는 행복을 얻었나이다. 7년 뒤에는 박해가 일어나 저희들에게 왔던 선교사는 많은 교우들과 함께 사형을 당했으며 다른 교우들은 모두 근심과 겁에 억눌려 차츰 흩어지고 말았나이다.
저희들에게는 오직 지극히 크신 천주의 자비와 성하의 크신 동정밖에는 바랄 것이 없게 되었사오니 지체없이 저희들을 도와주시고 구원하여주심을 바라나이다.
오직 이것만이 저희들이 울부짖어 비는 바이옵니다. 10년 전부터 저희들은 간난신고에 눌려있사오며 늙고 병들어 죽는 이 많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사옵고 살아남아있는 자들은 어느 때나 거룩한 교훈을 받을 수 있게 될지 모르나이다.
교우들은 이 은혜를 마치 목이 타는 자가 물을 갈망하듯 하오며 그 은혜 바라기를 마치가뭄에 비를 빌듯 하나이다. 그러하오나 하늘은 너무 높아 붙잡을 수 없사오며 바다는 너무 넓고 구원을 향해 건너갈만한 다리도 없나이다. 저희들이 성서에서 읽은 것이 있사옵고ㆍ성교는 온 세계에 설교되었사오며 오직 저희동방나라에 만선교사에 의하지 않고 다만 책으로 전해졌나이다.
그러하온데도 선교사가 오기 전후에 수 백명의 순교자들이 천주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사오며 지금 있는 신입교우의 수효도 1만 명이 넘나이다.
저희들 죄인이 교황성하의 도우심 받기를 얼마나 진실히, 얼마나 열절히 원하는지 형언할 수가 없나이다. 그러하오니 저희 나라는 원래 소국이며 대양 한구석에 멀리 떨어져있어 성하의 교훈과 명령을 저희에게 전할 수 있을 배와 수레가 오지 못하오니 이러한 결핍의 원인이 저희들의 열심치 못함과 죄 많음에 있지 않고 어디에 있겠나이까.
그러므로 저희들은 지금 지극한 두려움과 진실한 통회로 가슴을 치며 일찌기 지상에 강생하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의인들보다 오히려 죄인들을 구해주시는 성하께 지극히 겸손되이 비옵나이다. 저희들은 구속(救贖)되어 암흑을 빠져나왔나이다.
그러하오나 세속은 저희육신을 괴롭히옵고 죄악과 악의는 저희영혼을 압박하나이다. 저희들은 성세와 고백의 은혜를 받을 길이 없사오며 예수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하신 미사성제에 참여하지 못하나이다. 저희들의 원(願)은 크옵지만 언제쯤이나 그원이 충족되어지겠나이까.
저희들의 눈물과 탄식과 고뇌는 하찮은 것이오니 성하의 자비는 끝이 없고 한이 없는 줄로생각하오며 따라서 목자잃은 이 나라의 양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선교사들을 보내사 구세주 예수의 은혜와 공로가 전파되고 저희들의 영혼이 도움과 구원을 받고 천주의 거룩하신 이름이 어디서나 항상 찬양되게 하실 줄로 생각하나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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