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기섭은 조금씩 그런 것들을 알게 되었다. 뾰족하고 높은 지붕꼭대기에 큰 종이 달려있는 그 집을 사람들은 성당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 집에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그 집이 왜 온 누리에 종소리를 울려 퍼뜨리고 사람들을 부르는지, 사람들은 왜 그 집에 가고 그 집에 모여서 무엇을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천주님(하느님)이라는 분이 어떤 분이라는 것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믿음이라는 것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조금은 알 수가 있게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은 기섭 자신이 알려고 노력해서 알게 된 것이 아니었다. 혼자 곰곰 생각해서 스스로 깨우친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하는 얘기들을 듣고 하나하나 알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에게 말을 해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에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그는 다만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그런 말을 나누는 자리에서 귀동냥을 하였을 뿐이었다. 남과 남들이 주고받는 말을 옆에서 주워듣고 그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기섭에게 무관심하였다. 무감각한 것인지 몰랐다. 어쩌면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들 옆에 기섭이 있어도 그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이 즐겨 하고 잘하는 그 말들을 기섭에게는 해주지 않았다. 기섭이 살고 있는 집에 와서도 마님에게만 그런 말들을 하였다. 마님하고만 그런 말들을 나누면서 기섭이 간혹 옆에서 귀동냥을 해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귀동냥을 하려고 애쓰기도 하는 그를……
기섭은 그 사람들이 신자 또는 교인으로 불리운다는것을 진작에 알았고 그들이 자기들끼리는 교우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그 신자들은 주로 읍내사람들이지만 기섭이 사는 마을에도 신자들이 여러 명이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실에서 그는 웬지 모를 위축감을 뼈아프게 받는 것 같았다. 자신은 천주교 신자가 될 수 없을 것만 같고, 만약 된다고 해도 그들과 진정한 교우가 될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읍내의 그 뾰족하고 높은 지붕꼭대기에서 맑고 우렁찬 종소리가 온 누리에 울려 퍼지는 집-성당에 갈 수조차 없다는,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마저 우러올랐다. 그런 생각들은 너무 선명하였고, 때로는 뼈아프게 가슴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몸을 떨고 눈물을 짓기도 하였다.
기섭은 종종 읍내에 가서 읍내의 한 켠 언덕 위에 있는 성당을 보며 언덕 밑을 지나곤 하였지만, 한 번도 언덕을 올라가 보지는 않았다. 그가 읍에 가는 날은 주로 장날이었다. 상머슴이 되어서 집 안팎의 온갖 일을 다 하여 바쁘게 사는 그는 마님의 분부로 집에서 쓸 여러 가지 물건들을 사러 장날을 골라 읍에 나가곤 하는 것이었다. 너무도 일이 많고 바쁜 몸이어서, 한가한 틈을 내어 읍에 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그렇게 바쁘기 때문에 성당 언덕을 오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큰 호기심과 충동을 이기지 못하여 마치 종소리에 이끌리듯이 성당 언덕 밑으로 달려간 적도 있었고, 한가한 날 스스로 마음을 내어 그 곳으로 용감히 발걸음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끝내 언덕을 오르지는 못하였다. 도저히 오를 수가 없었다.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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