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주신 삶의 좌표(창세기2.16~17)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환경은 대단히 자유로 왔다. 이는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 먹어라』(2.16)는 말씀에서도 나타난다. 그렇게 많은 나무들 중에서 인간에게 금지된 것은 오직 한 그루의 나무와 그 열매 뿐이었다. 여기서 선악을 아는 나무로서 주신 금명은 인간의 한계성, 인간 자유의 제한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 이 금명은 인간을 속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있어야 할 사랑의 질서를 제시한 것이다. 창조주 하느님은 인간의 조건을 잘 아시기에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삶의 좌표를 주셨다. 인간이 참으로 사는 길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신뢰하며 그 뜻을 따르는 데에 있음을 알게 하였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꼭 죽으리라는 절대적 명령으로써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지켜 나가도록 배려하셨다. 이 명령은 인간을 시험하려는 걸림돌이 아니라 인간이 받은 사명임과 동시에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이 금명은 마치 사고가 잦은 길목에 세워놓은 위험 표시 판과도 같다. 그 표시 판은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세워놓은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을 시험하거나 유혹하기 위해서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여인의 창조
하느님만이 인간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유익한지를 알고 계신다. 고독한 인간을 위해 그에게 상응한 협조자를 생각한 분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먼저 동물들을 만들어 아담 앞에 데려왔다. 그러나 땅의 동물들이 인간의 동반자가 될 수 없음은 아담이 그것들에게 각각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말에서도 나타난다. 이름을 지어 부른다는 것은 그가 이름 부르는 그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지배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이제[아담과 동등한 협조자를 만드신다. 여기서 인간을 깊이 잠들게 했다는 것은 창조주의 행업이 인간에게는 신비임을 나타낸다. 하느님이 아담을 잠재워 놓고서 그의 갈빗뼈를 취하여 여인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남자와 여자의 완전한 상응 성을 암시한다. 남자는 기쁘게 여인을 자기의 분신이요 동등한 반려자로 맞아들인다.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다』(2.23)라는 표현은 환영의 환호성이고 창조주의 지혜에 대한 찬미이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가르침은 하느님이 여인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여인은 남자와 동등하며 남녀는 서로가 반려자로서 살아가야 함을 알려주는 말씀이다. 창세기는 여자가 남자의 소유물로 취급 받던 당 시대에 그러한 남녀불평등이 결코 창조질서 자체에 근거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과감하게 제시한다. 오직 죄악만이 올바른 질서를 파괴한다는 것이 창세기3장에서 언급된다.
성서의 결혼관
남자와 여자의 결합은 창조주 하느님의 창조질서안에 기반을 둔다. 남자는 여인과 함께 새로운 인생의 길을 가기 위하여 양친의 슬하를 떠나기 까지 한다. 이 남녀간의 이끌림과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둘이 한 몸이 되리라』(2.24)는 말씀은 단순히 육체적인 결합만을 뜻하지 않고 「한 마음과 한 뜻」이 되는 더 깊은 내면의 결합을 의미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여인의 창조로 인하여 이루어진 남녀간의 조화와 합일로 인한 인간성숙에 대한 설명이다. 『이는 지아비(이쉬=’Ish)에서 나왔으니 지어미(잇샤=’Issa)라고 부르리라』(2.23). 이 말씀에서도 볼 수 있음 같이 아담은 여인을 만남으로 해서 자신이 남자임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처럼 남자와 여자는 서로 보충하며 온전한 인간상을 이룬다.
그러나 이와 같이 아름다운 남녀의 관계가 상호존경과 사랑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중심적이고, 하느님의 뜻을 떠난 상태에서의 관계라면 파면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을 3장에서는 말하고 있다. 여기서 성서의 결혼관이 제시된다. 남녀가 서로 결합하여 함께 살아가는 부부일신의 결혼관이다. 고대인들은 흔히 성(性)을 신성시하거나 반대로 죄악시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서는 이러한 사상을 배제한다. 남녀가 건전하게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 하느님의 축복이며 의도임을 창세기2장24절은 명시한다. 예수님도 이 성경구절을 근거로 하여 부부가 이혼할수 없음을 설명하셨다. (마태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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