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냐? 하는 문제가 실로 우리 크리스찬들에게는 중요한 문제다. 여기에 대한 답변에 따라 그 신앙의 심도가 달라진다.
「그리스도는 죽은 다음 부활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믿고있다. 그분만이 유일하게 죽음을 극복하신 분이다. 다시 말해서 그분만이 삶과 죽음의 세계를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분이시기때문이다.
인간에게 가장 귀중한 생명이 죽어 없어진다는 사실 앞에 우리 모두가 인생의 허무를 느낀다. 그런데 여기에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했을 때 우리의 삶에는 새로운 의미가 주어진다.
석가세존께서도 보리수 나무 밑에서 도를 깨쳤다. 그래서 그는「부다」(깨달은 사람)가된 것이다.
공자님은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은 바로 『나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라고 하셨고 이것을 당신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입증해주셨다.
정말 예수가 죽은 다음 살아났을까? 이 문제를 오늘의 과학만능주의자들 또는 실증주의자 또는 경험론자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차원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영역이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 생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 사실을 어떤 과학이 설명을 할 수 있으며 실증론적인 이론으로 설명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내 존재 자체의 근본인 생명의 원천이신 그분과의 연결이 없이는 내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답변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면 죽음과 삶을 주관하시는 그 절대자의 차원에서는 죽음도 극복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남긴 많은 사실과 기적들이 있지마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새 희망을 주고 삶과 죽음의 궁극적인 해답을 주는 그의 부활이야 말로 그 가시도한 구원의 마지막 초점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크리스찬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교적인 신앙을 통해서「영원한 새 삶을」희망하는 초월적인 삶을 누리는 영원한 희망의 주인공들이다.
현세적인 물질이나 권력, 명예, 쾌락을 빌고 그것을 추구하는 현세적인 기복신앙이 아니다.
인간 생명의 신비를 파헤치고 그 신비의 근원 속에서 새로운 삶은 찾고 거기에 전 삶의 의미를 거는 것이 크리스찬 이름의 전부이다.
모든 세상의 조건은 이것을 위해서 주어진 방법적인 기회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진정한 크리스찬들은 그들의 생활관과 가치관이 다르며 어떠한 세상의 조건 속에도 「영생의 희망」으로 살아가는 진정 복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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