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에는 저희들이 다른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사오나 몇 해 전부터 성교가 전파됨에 따라 서양문물을 알게 되었나이다. 저희들은 그것을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즐겁나이다.
우리나라 전체가 서양 사람들의 수학지식과 서양예술가들의 재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그뿐만 아니오라 얼마 전부터 인구가 증가하였사옵고 그에 따라서 기아와 곤궁도 더해졌나이다. 성교를 미워하는 몇몇 고집장이를 제외하고, 또 불교를 믿는 몇몇 고집장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이가 이 많은 환난 때문에 기진하고 탄식하며 성교의 거룩한 도를 배우기를 원하나이다.
그러하오나 본성이 약하옵고 또한 방법도 없으므로 인하여 성교가 많은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중 갑자기 대박해가 일어났나이다. 박해로 인해 우리교우 중 가장 학식 있고 가장 덕 있는 분들은 모두 사형을 당했나이다.
그로 인해 얻게 된 근심은 나머지 사람들의 마음이 변치 않아야 할 것이 온데 법의 금지와 형벌과 죽음의 위협을 받고 무서운 본을 보았으므로 교유들이 겁을 내는 것이옵니다. 용맹한 사람이 나타나 저들의 용기를 북돋아준다면 저들은 기꺼이 수계를 할 것이 확실하오며 마치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들이 골짜기로 쏟아져 내려오는 듯, 열심히 달려들 것이옵니다.
2, 중국과 접경하여있고 그 속국이 된 저희 나라는 세계의 한 끝에 자리 잡고 있사오며 특유한 풍속이 있어 거기에 몹시 집착되어 있나이다. 출입국이 엄히 금지되어 있사온대 박해가 있은 뒤로는 더 심하와 파수꾼들이 전보다 백배나 더 조심하여 감시하나이다.
한편 저희들은 북경에도 박해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나이다. 그러하온즉 저희 영혼을 구하시기를 원하신다면 선교사는 바닷길로 보내야 될 것이옵니다.
다른 길은 믿을만한 곳이 없나이다. 저희나라에 육로로 들어오는 길은 북쪽밖에 없사옵고 다른 삼면은 바다이나이다. 저희나라의 연안에서 중국산동성까지는 천리도 되지못하여 바람이 그쪽에서 불어오면 닭 우는 소리라도 들려올 듯 하나이다. 저희나라의 남쪽지방은 남경(南京)성에서 불과 수 천리 거리에 있사오며 따라서 성교가 공인된 마카오에서도 3.4천리밖에 떨어져있지 않나이다. 만일 마카오에서 배를 떠나 보내어 그 배가 남경성과 유구(琉球)섬 사이를 지나 북쪽을 향한다면 며칠 안으로 저희나라 해안에 닿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곳에서 서울까지는 불과 백리에 지나지 않나이다.
비록 서해가 얕기는 하오나 작은 배는 항해할 수가 있사오니 저희들은 이쪽으로 밖에는 구원받기를 바랄 수 없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들이 청하옵는 바를 속히 마련하여 주시기를 성하께 겸손되이 간청하나이다.
3, 풍랑이 심하여 어떤 외국배가 저희 나라의 연안에 닿게 되어도, 그곳에 머물러있기를 허락 지 않나이다. 그 배들을 버려두지 않고 끊임없이 감시하오며 할 수 있는대로 빨리 떠나보내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들이 청하옵는 배에는 슬기롭고 유능하고 경험 있고 한문을 잘쓸줄아는 사람이 있어 이글로 저희들이 그와의 논할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이옵니다.
그뿐 아니라 교황성하께서 저희 상감께 선물과 정중한 편지를 보내심이 바람직하겠나이다. 이 편지에는 성하의 의향이 오직 하나이신 천주를 흠숭하고 성교가 전파되고 모든 사람이 자유를 누리고 나라들이 보존되고 여러 국민들 사이에 평화가 깃드는 데 있나이다. 또한 천주교의 도리를 명백히 설명하시고 온갖 성의와 온갖 예의를 갖추어 신부들은 조금도 나라를 정복하려들지 않고 다만 박애의 일을 하러간다는 것을 설득시켜야 할 줄로 아나이다.
이렇게 하면 혹시, 저희동포들이 눈을 뜨고 의심이 스스로 풀려 진리를 알아듣게 될지도 모르겠나이다. 저들은 서양인들이 예술과 학식과 슬기와 그밖에 다른 재주가 뛰어남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나이다. 또 저들은 서양인들과 대적하거나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조심을 하나이다. 그리고 저들은 서양선교사들이 온 세계를 두루 다니되 그들 중의 아무도 외국을 탈취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나이다. 그러하오나 조그마한 저희 나라는 의심과 겁이 많사온지라 단독으로 결정을 짓지 못하고, 결국 북경에 사신을 보내어 천자(天子)께 아뢰고 그 명령을 받아 천자의 보호를 확보하고 벌 받는 것을 피하려 할 것이 옵니다.
그러하온대 천자께서 어떻게 저희 조종에 경의를 표하고 선물을 봉납하러 오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할 수가 있겠나이까? 그러하온즉 저희 임금님과 조정대신들은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옵고 따라서 이 사자를 환영할 것이 틀림없나이다.
4. 남경성에서 가깝고 마카오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조선남해에는 경작할 수 있고 주인 없는 섬을 많이 볼 수 있나이다. 저희 나라는 육로도 해로로도 다른 나라와 왕래가 없으므로 저희들은 교양이 없고 약하옵나이다. 재주와 지식이 별로 없으므로 배를 타고 먼 나라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하나이다.
어떤 사람더러『뱃놈 되라』하는 것은 저희나라에서는 속담에 쓰이는 저주의 말이기도 하옵니다. 그러므로 마카오에서 배를 한 척 보내오 이 무인도들을 조사하여 보고 그 중 가장 적당한 몇몇 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옵고, 혹시 거기에 주민이 있으면 그들을 입교시켜 천주교인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옵니다. 이런 방법으로 하면 어쩌면 저희들이 이 불쌍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하오나 그렇게 하자면 시일이 많이 걸릴 것이므로 이것은 여의치 않을 경우에 쓸 방법이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저희들에게 직접 신속히 배를 보내 주시는 것이 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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