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언덕을 오르려고 하면 어떤 커다란 위축감과 슬픔들이 장벽처럼 앞을 가로막는 때문이었다. 성당 언덕이 한없이 아득하고 벅찬 너덜겅 같게만 여겨지고, 용기는 시르죽고 온몸에서 맥이 풀려 버리는 까닭이었다. 그래서 번번이 언덕 오르는 것을 포기한 끝에, 이제는 아예 그 언덕을 생각조차 하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도 기섭은 성당의 종소리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을 어귀 고개마루 옆의 산마랑을 오르는 것까지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는 바쁜 일과 속에서도 어떻게든지 짬을 내어 거의 매주 일요일마다 반나절 무렵에 맞추어 그 산날망을 오르곤 하였다. 그 산날망의 안식처에 앉아서 읍내 성당의 지붕 끝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듣곤 하였다. 맑고 풍성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듣고 앉아 있으면 마음이 더없이 상쾌해지고 훈훈해지는 것이었다. 슬픔들이 가라앉고 평화스러움이 밀려들기도 하였다. 한없는 평화와 위안과 때로는 알지못할 용기와 희망들이 종소리에 실려와서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이었다.
모든 지난날들을 추억하는 것도 그다지 괴롭지 않았다. 애기씨와의 지난날을 추억하는 것도…… 때로는 새로운 그리움들이 가슴속에서 살풋이 피어오르기도 하였다. 생각해보면 모두가 애기씨 덕분이었고 그 그리움 때문이었다. 울울함과 애틋함과 그리움 때문에 산날망을 오르게 되었고 성당의 종소리를 듣게 되었고 오늘의 평화와 안식과 그 모든 것들을 얻게 된 것이었다.
애기씨는 아버지와 할머니가 운명하였을 때는 중학생이었었다. 가냘픈 몸에 무서워 보이는 하얀 상복을 입고 쓰러지듯 땅에 엎디어 한없이 울음을 울었다. 그때의 그 가엾고 아름답던 모습…… 그런 애기씨도 이제는 점점 어른으로 성숙되어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름답고 새하얗고 고귀한 모습이었다. 기섭에게는 예나 다름없이 애기씨 인것이었다.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봉건적 유풍의 한 가닥은 여전히 완강하게 지속되는 것이었다. 애기씨의 어머니는 기섭에게 있어 이제는 아씨가 아니고 마님이었다. 아씨에서 마님으로 바꾸어졌을 뿐이었다. 마님이라는 명칭과 호칭을 계속 고집하는 그녀는 세월이 아무리 흐른다 해도 그 봉건적 유풍의 한 가닥은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기섭은 그런 마님에 대한 별다른 반감이나 저항감이 들지 않았다. 그녀가 혐오스럽지도 않았다. 부유도 부유지만, 기섭 그가 있기 때문에 그녀가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며 너그러운 마음도 들었다. 더불어 그는 고향을 떠나 지 않고 일생을 살았던 아버지도 원망스럽지가 않았다. 고향 땅에서 고스란히 천출의 모습을 지닌 채 살았고 또 그것을 남기고 간 아버지가 증오스럽지도 않은 것이었다. 또한 그는 아버지처럼 고향을 떠나지 않고 역시 천출의 모습을 지닌 채 살고 있는 자신도 과히 혐오스럽지 않았다. 물론 그는 두어 차례 고향을 뜰 결심을 하고 시도도 하였었다.
그러나 그것을 그만 둔 것이 마님의 만류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리고 애기씨에 대한 울울한 그리움 때문도 아니었다.
그는 산마랑에서 듣는 종소리, 성당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의 영역에서 벗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삶과 자신의 삶의 보상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새경과 자신의 새경을, 그 슬픔과 피땀의 결실들을 언젠가는 한꺼번에 찾고 싶었다. 언젠가는 찾게 되리라는 희망도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나고 살고 죽은 땅, 자신이 슬프게 자라난 땅을 결코 떠나고 싶지가 않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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