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저희나라 사람들은 능력과 지혜가 별로 없나이다 .
저희들은 다른나라 백성들의 재주에 멀리 미치지 못하오며 농산나 길쌈에 쓰는 연장 등 생존하기에 가장 필요한 물건도 보잘것이 없사오며 저희들의 가난은 비할데 업나이다. 가뭄이나 장마로 말미암아 흉년이 들면 양반과 상민을 막론하고 먹고 입을 것을 장만할 재원이 없나이다. 교우들로 말씀드리면 박해 때문에 동쪽으로 혹은 서쪽으로 우루루 몰려다니며 한군데에 편안히 머물러 있을 수가 없나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목숨을 이어나갈 재물까지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나이다. 그리하여 교우들은 거의 모두가 빌어먹는 처지에 빠졌나이다. 보통 영혼이 육신을 다스리고 육신이 영혼을 도와주는 이 서로의 관계는 자연적인 것이옵니다.
그러하오나 지금 저희들의 육신은 목숨을 보존하기에 필요한 방도가 없고 또 저희들은 영혼의 덕을 일으키기에 없어서는 아니될 수단이 없나이다.
학식이 있고 언변이 좋던 교유들은 모두 박해중에 죽었사옵고 그들을 대신할만한 사람들의 입교가 없나이다.
남은이라고는 오직 부녀자와 어린아이들과 너무 무식하여 「우」와「유」 두글자도 구별하지 못하는 남자들뿐이옵니다.
아무리 교우의 수가 많다하여도 그들은 넉넉히 배우지를 못하여 한 천주계시고 영혼과 상벌이 있음을 아오나 다른 신조는 거의 알지 못하여 그것을 가르칠수도 설명하여 줄 수도 없나이다.
그뿐아니오라 그들은 박해의 공포와 세속체면에 붙잡혀 있나이다. 굶주림과 추위로 고통을받고 일에 시달리어 그들은 서로돕지 못하오며 목자를 잃은 양들같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서 수계를 하기위해 모이지도 못하나이다. 그러하오나 그들 모두는 천주께서 자기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버리지 않으시기를 바라고 있나이다.
6, 저희들은 어떤곳에 교우 천명이상이 있을 때에는 신부 한 분을 보내야하고 만명이상이 있을때에는 주교 한 분을 보내야한다는 말을 들었나이다. 하기야 저희들은 성교에 대해 별로 배운것이 없사옵고 다만 대재나 지키고 경문을 외울줄 밖에 모르는 지라 정말이지 신자라고 불릴 자격도 없나이다. 그러하오나 저희들은 천주를 아는 사람이 만명이 넘사온대 하직 주교님의 다스림을 받지 못했나이다. 저희들이 바라옵는 것이 그다지도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옵고 저희들은 고통에 찍어 눌려있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에 의지하여 지극히 간절히 구하오니 교황성하께서는 저희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대로 빨리 영신의 스승을 보내 주시옵소서.
7, 저희들이 입교한지가 20년이 채 못되고 선교사가 오신지도 7년이 채 못되었는데 대박해가 일어났나이다. 그 전 박해때에는 순교자가 별로 없었나이다. 그러하오나 1801년에 시작된 박해는 매우 소란을 피워 성교회가 더 밝히 드러났나이다. 이 박해때에는 순교자가 1백 명이 넘사오며 (주: 사실은 3백여 명의 순교자를 냈다), 귀양간 이가 약4백 명이 되었나이다 성사의 신은과 은총을 더많이 받음으로써 그들은 용기를 얻었던 것이옵니다.
붙잡힌 교우들중에는 별로 학식도 없고 경문도 잘 외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잘 외우지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사온대 이들은 대개 투박한 백성들이었으므로, 그 사람들은 교우거나 아니거나 큰 상관이 없으리라 생각하여 석방하여 주었나이다. 이들은 고기떼모양으로 차례차례 옥에서 흘러나왔사온대 그 수효를 알수는 없나이다.
또한 선교사와 개인적인 접촉을 하지않아 고발되지 않은 자들도 도망하여 숨어서 아직까지 집도 가정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자들의 수효도 알지 못하나이다.
구원의 길을 모두 잃고 죽음밖에는 기다릴것이 없는 이 많은 영혼을 불쌍히 여기소서. 만일 서양에서 저희들을 동정하지않고 북경에도 아무런 기대를 걸수가 없다면 저희들은 무서운 절망에 빠져 들어가 만사가 끝이나고 말것이옵니다.
구원이 하루 늦으면 저희는 하루를 고생할것이옵고, 이들이 늦으면 이틀을 괴로와 할것이옵니다.
만약 서양에서 배가 오는 것을 보지 못한다면 만민을 가르치고 세례를 주자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도 이웃을 사랑하고 사람들의영혼을 구하기에 열심하라는 복음의 말씀도 모두 낡은 모자나 입지못할 누더기옷처럼 되고 말것이옵니다. 물에 빠져 처음에는 사람이 건지러오려니하는 생각에서 죽지않으려고 애를 뜨다가 그 기대가 어그러졌음을 알게된 사람같이 저희들은 모든 희망을 잃을 것이옵니다. 성하께서는 저츼들에게 위험이 닥쳐옴을 보고 울부짖는 이 온당치못한 부르짖음과 두서없는 말씀으로 횡설수설하옴을 용서하여 주시옵도록 간절히 바라나이다. 물이나 불속에 뛰어든 사람모양으로 저희들은 이미 자제력을 잃었사옵고 정신이 빠져 버렸나이다.
8, 지속적인 박해로 인하여 저희들은 신자가 옷속에 감추기 쉽도록 이 글월을 비단에 쓸 수 밖에 없나이다. 이 밀사는 집중팔구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나이다. 그러므로 성하께 두꺼운 책을 보내드릴수는 없나이다. 다만 선교사와 강완숙 꼴롬바 회장과 그밖의 순교기록과 특히 뛰어난 일을한 45명의 성명을 보내드리는 것에만 그치나이다 (이 명단은 북경주교에게 보낸 편지 참조할것)
그들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 여러권 되옵는데 기회가 오는대로 성하께 보내들릴까 하나이다. 왜냐하오면 저희동포 순교자들은 비록 불쌍한 외국신민이라할지라도 성교회에 들어가는 행복을 누렸사오며 그들의 이름과 공로는 이를 위해 죽은이들의 책에 쓰여졌나이다. 그들은 참으로 천주께 의합한 자들이요 동정성모와 천사들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오니 천주께 의합한 만큼은 성하께도 의합할 것이옵니다. 저희 순교자들의 공로를 의지하여 저희들은 천만줄기 피눈물로 영신적 구원을 하루빨리 받기를 바라나이다.
신미 (辛未=1811)년 10월 24일 (주=양력 1811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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