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세상 사람들은「알아야 믿지!」한다. 그러나 알기전에 먼저 믿어야 한다. 지식보다 신앙이 앞선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전에 이 세상이 있다는것을 알고 태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주어진 인간 생명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안다는 것은 적어도 생명을 받고 수년이 지나야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무지」를 극복하는 길은 믿는 길이다. 우리가 죽은 다음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 어떤 인간도 대답할수 없다. 이것은 너무나도 깜깜한 미지의 세계이다.
비단 죽은 다음의 문제뿐만 아니라 내일에 일어날 사건에 대해서도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내일 아침에 동녘에서 해가 뜬다는 것은 누가 증명 할 수 있으며 내일은 누가 체험해 보았는가? 그러나 우리는 내일의 희망으로 살고 있다. 내일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죽은 다음에도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 소망, 바람이 있어야 한다. 이 소망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다. 적어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절대자의 말이 있기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매순간 지식으로 알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간다.
우리가 어떤 집을 방문한다고 생각해보자! 그집 주인이 나를 죽이지 않을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집이 무너지지 않을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그집을 방문할 수 있다.
그 집주인의 신원을 증명하고 그집이 역학적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지어졌다는 것을 증명하고 그집을 방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모든것을 믿고 우리는 인간관계를 통해서 사회생활을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아는것」보다 먼저「믿는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매순간 믿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다. 모든 사건들을 모두 주위 여건들을 지식으로 증명을 하고 우리는 살아갈 수는 없다.
그래서 성 안셀모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알기 위해서 믿는다』그리고 어떤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신앙은 산을 옮길 수 있고 불신은 자신의 실존마저 부인한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사실과 현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떤 절대 원칙에 순응해서 그것을 받아들임으로 해서 해결되는 것이다. 자신의 실존을 어떤 지식으로 좌우할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내가 지식을 갖기 전에 나는 먼저 존재한다. 나는 내가 무엇인지 모를때 벌써 존재했었다. 그러므로 지식보다 신앙의 차원이 아니면 인생의 궁극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어떤 과학이, 어떤 철학이 인생의 문제를 답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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